서식하다 (棲息--)
[동사] 생물 따위가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다.
나는 집안에 '서식'한다. 달팽이가 달팽이집과 오래 떨어져 있지 않듯, 나 역시 내가 서식하는 집에서 오래 떨어져 있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돈을 벌러 나가거나, 하루 이틀 사람을 만나러 나가거나, 동네 산책을 다녀 오는 시간 빼고는 집안에 머문다. 달팽이처럼 집을 업고 다니지는 못하는 처지라, 나는 볼일을 보면 집으로 곱게 돌아온다. 코로나로 하던 일이 비대면 화상 모임으로 전환되는 요즘이라 서식지는 종종 일터가 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집은 6층이다. 정오가 지나기 전까지 거실 깊숙이 햇볕이 들어오는 동향 집이다. 내 방은 동쪽으로 작은 창이 나있고, 남쪽으로도 큰 창이 있어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항상 빛이 머물러 있다. 흐린 날이 아니라면 집에만 있어도 빛에 흠뻑 젖는다. 이전에 살던 집은 빛이 거의 없었다. 창문은 온통 반대쪽 건물 벽에 막혀 있었다. 현관을 열었을 때 반대쪽 담벼락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자연 채광이었다.
“창세기 1장 3절 _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인간의 수명에서 보면 수명이 100억년쯤 되는 태양 빛은 영원에 가깝다. 그 영원에 기대어 어느 시점에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잉태했고, 이후 생명이 생명을 낳는 번식 프로젝트가 대대손손 성공한 덕분에 지구에는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고 있다. 나는 33년 전, 엄마 아빠의 허니문 프로젝트가 성공한 덕분에 최초의 집을 얻었다.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 받고, 엄마의 심장 소리를 항시 들을 수 있는 자궁 집이었다. 그 어둡고 안락한 집에 한동안 머물다가 10개월 후에 느닷없이 세상으로 나왔다. 빛이 온 몸으로 쏟아졌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집 밖에는 여러 친구들이 산다. 1층 주차장에 자주 오는 길고양이 미료가 있고, 우이천 산책길을 걷다 보면 물 위에서 헤엄치거나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청둥오리들을 만날 수 있다. ‘오리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보여주는 씩씩한 친구들이다. 그 외에도 왜가리, 백로, 잉어, 원앙 친구들과, 목줄을 하고 산책을 하는 반려견 친구들이 있다. 그들도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집 안에서 나는 나의 친구이다. 나하고 놀고, 나하고 대화하고, 나하고 밥을 먹는다. 그러다 나랑 노는 것이 심심할 때가 있는데 요즘 들어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나만으론 심심한 날이 늘고 있어 문득 집 안에 다른 생명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셰어하우스라 하우스메이트로 지내는 두 명의 사람 친구가 있지만 딱히 공감대가 없어 데면데면하다. 그래서 사람 말고 비인간 생명 중에 누구와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창세기 1장 21절 _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꽃집이 보였다. 초록 식물이 눈에 띄었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로 진열 되어 있었는데, 보기에 좋았다. 그 중에서 두 가지를 골랐다. 행운목과 홍콩 야자라는 식물이었다. 행운목은 마치 나무 줄기를 토막낸 모양이었는데, 중간 중간에 잎이 자라고 있었다. 수경식물이라고 해서 작은 그릇에 물을 받아 올려 놓았다. 홍콩야자는 잎이 풍성해서 작지만 열대성 관엽식물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며칠 뒤에는 다른 꽃집에서 솔잎 도라지도 데리고 왔다. 보라색 꽃잎이 예쁜 야생화였다.
어느날 아침, 산책을 나가려고 덜 떠진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이제 막 거실로 들어오는 햇빛을 쬐고 있는 행운목, 홍콩야자, 솔잎 도라지가 보였다. 초록 생명이 각기 종류대로 어울려 있으니, 집안에 서식하는 인간이 보기에 좋았다.
집 안에 서식하는 인간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다. 초록 생명들이 보기에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은 성동신문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