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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Nov 14. 2020

걷기 싫지만,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울숲


1. 탈출 


서울숲이 2005년 6월에 개장할 당시, 나는 고3이었고 6월 모의고사의 여파로 교실 안팍으로 스산해진 분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입시 준비로 세상물정엔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어떤 인연으로 수능을 두 번 본 후에 서울숲과 가까운 대학에 입학했다.

얼마간의 자유를 얻은 신입생들은 공부보다는 남는 시간을 어디에서, 누구와 보낼 것인가에 골몰한다. 무리짓기에 성공한 새내기들은 앉을 만한 잔디도 없고, 아스팔트 산 같은 삭막한 학교 밖을 배외하다가 어쩌다 서울숲에 닿고, 서울숲을 걸으며 공강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나는 서울숲에 가지 않았다. 주로 당구를 치거나 낮술을 마셨다. 내가 서울숲에 처음으로 간 것은 10년이 흘러 졸업할 때쯤이었다. 서울숲 근처로 이사하고 나서였다. 생활권 안으로 서울숲이 들어오자, 일부러 찾아 가기도 하고, 응봉교와 성수대교를 건너 압구정에 가거나 한강을 보러 갈 때 서울숲을 거쳐 가기도 했다. 


2. 꽃사슴


서울숲 설계공모는 2003년 1월 공고되어 3월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성동구 성수동의 35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지역으로, 이전에는 경마장과 골프장이었다. 총 사업비는 2510억이며 그 가운데 공사비만도 500억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살면서 내가 설계, 공사한 평수라고 해봐야 1평에서 3평 남짓한 원룸 DIY 꾸미기 정도였으니, 35만평의 규모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뉴욕 센트럴 파크는 100만평이 넘는다. 서울은 산이 많지만 생활 주변의 녹지 공간이 부족하여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원조성이 필요하다는 설계지침에 따랐다고 한다. 서울숲은 그 지침에 어느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나 역시 등산은 부담스럽고, 피톤치드와 비인간 생명들이 그리울 때 서울숲을 찾았다. 

서울숲 근처도 자주 걸었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살게 된 동네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어디든 걷게 했다. 응봉산 팔각정에 올라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물길을 보기도 했고, 노을이 질 때쯤엔 오래된 빌라와 주택이 밀집한 사근동 오르막길을 걸으며 길쭉한 그림자와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녹음을 보고 싶고, 흙길을 걷고 싶고, 꽃사슴을 만나고 싶을 때 서울숲으로 향했다.


3. 자동차 


의식해서 걷기 시작한 후부터, 내가 사는 도시가 보였다. 서울은 자동차 친화적인 도시다. 지도 어플을 확대하고 축소하며 서울 지리를 둘러보는 취미가 생겼다. 서울은 각종 자동차 도로 - 간선도로, 순환도로, 고속도로, 터널, 자유로, 외곽도로, 전용도로,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한강대교... - 가 덩굴 식물처럼 뒤엉켜 도시를 점령한 것처럼 보였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공장소는 아스팔트의 바다에 떠 있는 건물이 되고, 도시 설계는 한갓 교통공학이 된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육체노동에서 해방되어 감각 차단실과 다름없는 거주공간, 사무공간 안에 집어넣어진 이 몸뚱이에게 남은 것은 성애적 육체성이라는 잔여물뿐이다. (...) 성애가 이토록 강조되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육체성의 다른 측면들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임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움직임의 제한이 초래하는 감각의 불균형이 왜곡된 성애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비된 감각을 깨우기 위해 솔닛은 걷기를 제안한다. 걷기는 단순히 어디로 가기 위한 수단 이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목적지 없이 걷기 그 자체를 위해 걷기도 하고, 산책의 역사는 그런 방식의 걷기를 실천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말한 루소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지금 내 몸의 감각이 불균형하거나 생각이 꽉 막힌 것 한다면, 걸으라는 몸의 신호일 수 있다.


4. 보행자의 시대


나는 면허는 있지만 차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차를 사는 날보다 자율 주행의 시대가 먼저 올 것 같기 때문이고, 언젠가 자동차와 운전자의 시대가 저물고 걷기, 킥보드, 자전거, 휠체어의 시대가 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충분히 그런 시대는 아니니까, 주변에 걷기 좋은 길이 없다면 찾아 가는 수밖에 없다. 걷기 좋은 동네를, 걷기 좋은 공원을. 


5. 명상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에 있는 서울숲 10번 출입구로 내려가면 오른쪽 편에는 꽃사슴 방사장이 있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숲속길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몇 년 전 아침에 카페 오픈 알바를 할 때, 일을 마치고 성수대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올 때, 서울숲 길을 일부러 통과하곤 했다. 숲속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앞 뒤로 빽빽한 은행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으면 도시의 산만함을 잠시 잊고 고요해질 수 있다. 가끔씩 꽃사슴 방사장에 들러 먹이를 주기도 했다. 꽃사슴 혓바닥이 내 손등을 쓸고 갈 때의 느낌이 그리울 때가 있다. 


6. 씨앗


걷기 위해 항상 서울숲을 가는 건 아니지만, 서울숲에 가면 걷게 된다.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서 서울숲까지 걸어서 가진 못하지만, 또 걷고 싶을 때 꼭 서울숲을 가야 되는 건 아니지만, 서울숲에서 만났던 사람들, 생명들, 풍경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걷기의 인문학 / 리베카 솔닛)  

이런 이유로 가끔씩 서울숲을 생각하고, 서울숲을 걷는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또 이런 이유로 새로운 장소들을 찾게 된다. 세상을 두루 살피면서, 오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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