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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esta Mar 01. 2020

#북리뷰 「앵무새 죽이기」

순진하게 노래하는 앵무새를 향한 차별과 선입견의 총구



 국인들이 제일 사랑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남부라는 명확한 공간 배경을 가진 소설입니다. 그리고, 흑인 인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한창 인종갈등이 심했던 시대인 1930년대를 그려낸 소설이지요. 흑인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던 시절, 하퍼 리가 그려낸 인종 차별의 부조리함은 많은 공감을 사며 이 책을 세계적인 명작의 반열에 올려 두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세계적인 명작입니다. 몇십 년간 수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심금을 울리는 문학 작품으로 읽히고 또 읽혀 왔지요.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세계를 향해 있지 않습니다. 미국 남부라는 공간 배경, 미국의 대공황 직후라는 1930년대의 시간 배경, 그리고 인종 갈등이라는 미국적인 문제의식까지, 지극히 미국적인 배경을 갖춘, 한정적인 독자를 향한 책입니다. 왜 「앵무새 죽이기」는 아직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읽히는 것일까요?


 인종 간의 불평등이 많이 사그라들고, 특히나 흑인에 대한 차별을 겪지 않은 동양에서도, 지역주의적인 20세기 초 미국 남부의 정서에 공감할 수 없는 사람도, 이 책에서는 가슴속 깊은 공감대를 건드리는 어떤 울림을 얻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 글에서는 「앵무새 죽이기」가 어떤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는지, 왜 사람들은 이 책을 사랑하는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이 책이 명작인 이유를 제 나름대로 설명한 글입니다.



순수함을 잃어 가는 성장 소설


 어린 스카웃은 잘 모르는 듯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군내에서 존경받는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주변 이웃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그녀 주위 이웃들도 대부분 교육받은 사람들이지요. 이 책은 차별을 다루는 책이지만, 그녀는 차별이 무엇인지 겪어보지 않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차별을 주인공을 통해 공감하는 대신, 주인공의 눈으로 목격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카웃은 과거를 회상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9살 소녀의 시점을 씁니다. 그녀가 배운 것, 느낀 것 들을 회상하며 가끔 성숙한 화자가 등장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건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먼, 그녀의 가치관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 우리는 그녀의 눈으로 본 사건을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둘째, 어린 소녀는 어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에게 현실을 보여주는 9살 소녀의 눈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나쁘다고 가르치는 교육과, 흑인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편견 둘 다 갖추지 않은 한없이 투명한 렌즈입니다.


 스카웃이 처음 만나는 편견은  세 집 건넌 이웃 아서 "부" 래들리에 관한 소문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방황했던 일 때문에 그의 아버지와 형에게 자택 근신 비슷한 조치를 받습니다. 그로 인해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교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메이콤에서는 배신에 가까운 이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비난과 뒷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아이들까지 이런 소문을 듣고 확대하여 메이콤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그의 집은 귀신의 집 취급을 받습니다.


 책의 1부는 부 래들리와 관련된 모험담이 큰  비중을 갖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귀신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나이이자, 모험심에 가득 찬 아이들은 그의 집을 모험의 장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 아이들의 소문에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졌던 부 래들리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옷을 수선해 주기도 하며 , 결정적인 순간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 젬을 구해 주기도 합니다.


 소심하지만 따듯했던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버린 편견에서, 주인공 스카웃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편견은 날카로운 비난이나 물리적인 공격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놀이 속에, 악의 없는 소문 속에도 숨어 있을 수 있던 겁니다. 그리고 스카웃이 어릴 적 순수하게 받아들였던 커닝햄, 유얼 가족과 흑인에 대한 '지식'역시 스카웃의 머리가 커 가며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톰 로빈슨의 변호 사건을 보고, 아이들의 정의관은 흔들려 버립니다. 돈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메이콤 사람들을 네 가지 부류로 나눕니다. 농산물로 수임료를 내던 커닝햄 가 사람은   흑인에게 무력을 쓰려고 하고, 착실한 흑인은 쓰레기 같은 백인에게 허위 고발당하여 감옥에 갑니다. 책의 후반부로 가며 부 래들리에 대한 편견이 깨지지만, 스카웃과 젬은 또 다른 편견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사회가 만든 편견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과정 역시 이 소설이 보여주는 무서운 점 중의 하나입니다. 처음에 부 래들리에 대한 안 좋은 뒷소문을 믿어 놀이거리로 삼았듯, 그들이 목격한 가난한 커닝햄 집안 사람들과 막장 집안 유얼 가 역시 그들에게는 계층을 이해하는 예시가 되어, 이후 그들이 현실을 보는 데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 갈수록 순수함이 사라지는 사회가 우리에게 씁쓸한 끝 맛을 남겨 주는 것 같습니다.



앵무새 죽이기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은 2부부터 시작되는 흑인 톰 로빈슨의 재판입니다. 1부에서부터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가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 보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1부에서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깜둥이 애인이라고 비난받는 아버지와, 단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에도 편견을 가지고 보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그들에게 그 사건이 무엇인지, 흑인에게 죄가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판은 흑인 톰 로빈슨이 백인 하층민 집안의 메이엘라 유얼을 강간했다는 죄목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피해자로 자처하는 유얼 집안 사람들은 무능하고 게으를 뿐만 아니라, 반항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은 소설 틈틈이 나오고, 재판 중 밝혀진 톰 로빈슨은 성실하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흑인 청년입니다. 톰 로빈슨이 과연 메이엘라를 강간했을까요? 그리고 그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두 질문 모두 어떤 대답이 나올지,  직감이  것입니다. 이 둘 사이의 분쟁은 인간으로서 최악인 백인과 모범적이고 강인한 흑인 청년 중, 누가 더 괜찮은 취급을 받는지를 보여 주는 재판입니다. 그리고 누가 더 나은 인간인지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무죄가 분명한  증거들 속에서 편견과 반감만으로 유죄를 선언하는 배심원의 모습과, 명확히 대조되는 두 인종 대표는, 죄인을 찾는 눈길을 피고인석에서 배심원석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들 각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흑인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들 개개인이 흑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것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식이 변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작은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편견이 모여, 성실한 청년 한 명을 쏘아 죽였지요. 이웃을 도울 줄 아는 따듯한 청년에게 백인들의 질서 속 작은 자리 하나를 마련해주지 않았습니다.


 편견으로 칠해진 색안경은, 상대방의 '살갗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고, 그를 배려하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 각자가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는 편견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파괴하는 총탄이 될 수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가 가치 있는 문학 작품인 이유는 편견의 작동 방식을 부드러운 문체 속 날카롭게 지적하고, 또 우리가 소외받는 사람들의 살갗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일 겁니다.


 소설 속 스카웃의 담임 캘퍼니아 선생님이, 유대인을 박해한 히틀러의 편견을 잘못이라 가르치면서 동시에 흑인이 주제넘다고 비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가 우리의 이런 이중적 행동을 막아 주기만 한다면, 저는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을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올려 두고 싶습니다. 색안경을 끼지 않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 우리 스스로 그들의 살갗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법을 안내해 준 것이, 이 소설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명작으로 남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웅의 또 다른 이름, 아버지


 개인적으로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은 어린 스카웃이지만,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그녀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은 후 그의 팬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하고 지적이며, 집 안과 밖에서의 행실이 다르지 않습니다.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한 치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가끔 보면 비인간적일 정도로 각 잡힌 삶을 유지해 가지만, 현실성을 조금 잊고 마음 놓고 반하고 싶은 성격의 인물입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스카웃과 젬의 성장 소설이고, 그들의 관점에서 본 아버지는 교육자로써 역할을 완벽히 해 냅니다. 어릴 적 아이들이 무서워한 듀보스 할머니의 별세와 톰 로빈슨의 재판 과정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하게 되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옮은 쪽으로 변하도록 잘 인도해 줍니다.


 옮은 쪽이란, 애티커스 핀치에게는 타인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박애 정신입니다. 스스로 선 자리에서 맡은 바를 정확히 해내며 형평성을 잃지 않는 모범적 시민상이기도 합니다. 부 래들리와 톰 로빈슨을 사실만을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성 역시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올곧음에서 나오는 멋과, 따져보면 비현실적인 그의 인품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애티커스 같은 주민이자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욕구를 불어넣어 줍니다. 저는 그의 모습이 작가가 생각한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면 세상은 편견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는 제안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물론 소설 속 사건들 속 공정한 인물이 맡은 역할이 크기도 하지만, 중요한 인물과 매력적인 인물은 다르니까요. 닮아야 할 사람을 닮고 싶게 그리는 것도 소설가로서 빼어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카웃과 젬이 처음 총을 갖게 되던 날,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앵무새(원작 흉내지빠귀)는 우리를 위해 노래하는 것 말고는 아무 잘못이 없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에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를 관통하는 말이고, 작가가 생각한 편견이란 죄 없는 앵무새를 죽일 수 있는 총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가 달라졌습니다. 흑인 차별이 과거에 비해 많이 사그라들었고, 국내에서는 애초 비중 있는 사회적 논제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서 다루는 본질은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든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앵무새는 누구이며,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편견은 누구를 겨누고 있습니까? 그리고, 방아쇠에 검지를 올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편한 주제를 다루지 않지만 편하고 따듯하게 읽히기까지 하니, 남녀노소 구분 없이 편하게 읽고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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