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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esta Feb 09. 2020

<영화> 업(UP)

아름다운 추억이 남긴 미련을 떠나보내는 여행

 



 애니메이션의 단점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픽사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장점을 수준급으로 활용할 줄 아는 회사이다.


 픽사의 만듦새에 대한 찬사는 누구라도, 영화 <업>의 초반 15분을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모험을 소년과 소녀의 만남까지는 여느 애니메이션과 다르지 않지만, 그들이 결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음악이 흐르고, 관객의 감정은 스크린에 사로잡혀 버린다.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에 같이 웃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비극에 슬퍼지다, 다시 꿈을 좇아가는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에 미소 짓고, 꿈을 눈앞에 두고 홀로 남은 할아버지의 모습에 울게 된다. 침대에서 일어나 홀로 식사하고 청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왜인지 쓸쓸해 보이다가, 몇 겹으로 잠긴 집 밖을 나가 보이는 공사판 한복판에 놓인 집은 마음을 닫아 건 할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미련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보는 사람의 감정까지 흔들어 놓는 고급진 표현이 또 있을까! 대사 하나 없이 음악과 화면만으로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하는 명품 인트로 덕에, 우리는 인공 할아버지, 칼 프레드릭슨에게 충분히 공감하며 영화를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공사판 가운데서 버티며 인부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집을 풍선으로 띄우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여도 우리는 주인공을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칼과 아내 엘라는 어릴 적부터 찰스 먼츠라는 탐험가를 존경해 왔고, 그들이 공유한 꿈은 그가 있는 파라다이스 폭포에 집을 짓는 것이었다. 엘라가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겠다는 집념에 가까운 목표 아래 칼은 풍선으로 집을 띄우는데, 그에게 그녀와의 추억으로 가득 찬 집은 엘라의 대체물이다. 그러나, 엘라를 폭포로 데려다주는 모험 길은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들을 만난다.

 

 이 걸림돌이란 그가 원치 않는 여행의 동반자이다. 탐험대 대원 러셀과 말하는 개 더그, 신비한 새 케빈이 폭포로 가는 그의 길에 나타나고, 칼은 그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풍선들이 집을 띄워 집을 움직이게 만들지만, 점점 바람이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못 움직이게 되기 전 얼른 폭포 옆으로 가고 싶어 하는 칼에게 그들은 짐 덩어리일 뿐이다. 꼬마 러셀이 케빈과 정을 붙이고 교감하는 동안 칼은 오직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의 인식은 그가 선택의 기로에 처했을 때 잘 드러나는데, 모험 중 개들에게 이끌려 찰스 먼츠에게 끌려가는 사건이 있었다. 어릴 적 우상이지만 전설의 새를 잡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찰스, 그 새가 바로 케빈임을 안 칼은 케빈을 지키려고 찰스에게서 도망치지만, 케빈은 그의 둥지 근처에서 그물에 포획되고 만다. 그와 동시에 찰스는 칼의 집에 불을 지르고, 불을 끌 것이냐 그물을 자를 것이냐의 선택에 놓인 칼은 결국 집을 지키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그에게는 같이 모험을 헤쳐나간 동료보다 모험의 목적이 우선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가치관은 곧 뒤집히게 된다. 케빈을 희생하고 나서 아슬아슬하게 파라다이스 폭포 옆에 도착하지만 허전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던 칼은, 아내의 모험 일지에 남아 있는 그들의 결혼 생활을 보게 된다. 아내에게 그와의 결혼은 하나의 모험이자 삶의 의미였던 것. 그 역시 모험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음을 깨닫고, 러셀을 보러 가지만 그는 이미 케빈을 구하기 위해 풍선을 타고 떠나는 중이다.


 다음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가 깊게 녹아있는 장면이다. 칼은 러셀과 케빈을 구하러 가기 위해, 집 안 가구들을 하나씩 버린다. 엘라와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집 밖으로 내어 놓으며. 엘라를 위한 여행, 엘라와의 추억을 단 하나도 놓을 수 없어 집 채로 싸들고 온 모험에서 엘라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케빈과 러셀, 더그가 함께하는 현재의 모험을 위해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과거에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현재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사는 것. 영화의 첫 장면만큼이나 아름다운 메세지이다. 그런데 모험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찰스와 다르게 칼은 어떻게 미련을 떨칠 수 있었을까? 칼의 목표는 이미 세상에 없는 엘라를 위한 것이었다. 즉 그의 목표의 달성 여부는 스스로만이 판단할 수 있었고, 엘라의 모험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안 이상, 폭포 위에 마련된 그들의 자리만으로 칼은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찰스 먼츠의 동기는 영예에서 나오는데, 사회와 단절된 이후에도 개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계를 채워 주고 예절을 가르쳐 대접받고 살고자 하는 먼츠의 모습에서 그의 욕심이 쉽게 보인다. 이런 그가 모험의 증표 없이 돌아가서 받을 비웃음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외적인 동기에서 나온 꿈은 오히려 구속이 될 수 있다는 메세지를 담은 먼츠. 이 영화는 꿈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 의식을, 중심 메세지를 해치지 않도록 이야기에 살포시 얹어 놓는다


 영화의 결말로 가 보자. 우여곡절 끝에, 칼은 찰스 먼츠를 무찌르고 케빈을 구하는데, 찰스를 무찌르기 위해 그는 집을 희생해야 했다. 그러나 '저건 그저 집일 뿐'이라며 미련을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칼. 케빈을 집으로 보내준 후 러셀에게 보호자 역할을 해 준다. 아들이 없던 칼과,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했던 러셀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준 셈이다.


 풍선 집을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의 우여곡절 모험담, 영화 <업>. 애니메이션이 명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픽사의 수작이었다. 가볍게 보면 그것도 그대로 재미가 있고, 깊이 파고들면 그에 걸맞는 메세지가 우러나오는 영화이며, 동시에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의 미학 역시 놓치지 않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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