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2020년 다시 우한시에서 발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에 악몽을 되새기고 있다. 메르스 이전에도 신종 플루, 사스 등 잊을 만하면 나타나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변종 바이러스 사태, 과연 영화는 바이러스 재난을 어떻게 그려낼까?
국산 영화에서도 생각나는 후보가 한 가지 있다. 치사율 백 퍼센트의 변종 조류독감을 다룬 영화 <감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감염이 곧 사망이라는 설정은 자극적이지만 현실성이 낮고, 실제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극단적인 치사율의 바이러스는 오히려 전염성이 제한적이다. 영화 역시 분당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소적 혼란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번에 다룰 영화 <컨테이젼>은 전파 경로에 대한 고증과 정부와 시민의 대응을 다각도에서 묘사한 점에서, 자극성보다는 바이러스 사태 재현에 무게가 훨씬 많이 가 있다. 또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주는 위급함도 더 잘 표현되어 있다. 바이러스 사태를 실제로 겪는 현시점에서 본다면 재미있게 볼 영화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 발생일 기준으로, 영화는 2일 차에서 시작한다. 홍콩에서 비행기 편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 바람을 핀 걸 암시하는 여자의 통화와, 바이러스라는 주제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무섭게 느껴지는 가벼운 기침 등. 그리고 홍콩에서 떠나는 중인, 병에 걸린 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다음 날, 첫 장면의 여자, 베스 엠호프는 집에 돌아와 곧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다가 발작을 일으키고, 곧 쓰러져 후송되지만 하루를 못 버티고 죽는다. 질병 발생 3일 차,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비슷한 사망자가 나타난다.
새로운 질병의 사망자가 나타나고, 보건 당국은 전염병을 인지하고 사망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서둘러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에게선 이미 증상이 진행되는 상태. 카메라는 그들의 손이 무심결에 닿은 버스 지지대, 문 손잡이, 엘리베이터 버튼 등을 유심히 비춘다. 영화가 전파 역학을 보이는 데 공을 들인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다.
실제 후반부에 전파 과정 분석 장면, 홍콩 카지노의 폐쇄회로 영상 재생이 나온다. 이때 베스 엠호프의 손이 닿은 휴대전화, 술잔 등을 만진 사람들이 전부 전염병의 숙주가 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공포감을 압축해 둔 소름 돋는 장면이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관객을 휘어잡고 있지 않다면, 이 장면은 그저 카지노 파티 장면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 재난영화에 걸맞은 연출로, 우리의 경각심을 자극하는 장면.
바이러스에 대한 고증도 눈여겨볼 부분이지만, 이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반응도 흥미롭다. 도시 봉쇄령을 누설하는 정부 관료, 공포감이 확산되자 사회 질서를 무시하는 시민 등 이기적인 사람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 감염 후 스스로 격리되는 조사관, 백신을 스스로에게 투여하여 검증 시간을 단축시킨 의료원 등 이타적인 사람이 공존한다.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는 시각은 다양한 고민을 낳게 하기 마련이다. 전염병의 딜레마에서 정부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공포감이 지배한 사회 속 과연 질서가 유지될 수 있을까?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이 먼저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지만, 정작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은 정부의 대응 상 허점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전염병을 퍼트린 사람이나 방역망의 허점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즉각적이며 날카롭다.
물론 경각심을 갖고 조심하는 태도는 강조하고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보균자가 철저히 주의하고, 아무리 방역 검사를 세밀하게 한다 해도 이들은 질병과의 전쟁의 주역이 아니다. 최전선에 선 사람들은 밤낮으로 의심 환자를 색출 관리하는 조사관,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을 쉴 틈 없이 보살피는 간병인, 책임감을 갖고 필사적으로 연구하는 의료진들이며, 결과적으로 사태를 막고 해결하는 사람들은 이들이다. 하지만 왜인지 이들의 존재감은 사람들에게 미미한 것 같다.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 중 흥미로운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블로그에 검증되지 않은 뉴스를 퍼트리는 자칭 기자 앨런, 그는 개나리가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찌라시를 퍼트려 영향력과 이익을 한 번에 거머쥔다. 위치가 애매한 악역이지만, 시원한 해결책을 내주지 못하는 정부에 비해 불안을 한 번에 해소해 주는 찌라시가 주는 영향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가? 바이러스 사태에서, 보균자가 아닌 시민들은 바이러스가 아닌 불안감과 주로 싸워야 한다.
이 불안이 건전한 경각심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래서 개나리, 보약, 동물 구충제 등이 병을 낫게 해 준다는 미신에 가까운 정보를 믿어버린다면, 병에 걸리지 않은 시민들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아이러니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전염을 조심하되 공포에 지배되지 않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과 간병인들을 믿고 응원해 주는 것이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시민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의 최초 희생자인 베스 엠호프는 에임 엘더슨 사의 중역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에임 엘더슨 사의 크레인이 밀어버린 나무에서 도망친 박쥐가 음식을 흘리고, 이걸 주워 먹은 돼지가 운반되어 주방장의 손에 요리되고. 요리하던 주방장이 손을 대충 씻은 후 베스와 악수를 한다.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병의 기원을 덤덤하게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지금껏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과 사회 혼란을 보여주는 데 주목한 영화가, 질병의 원인을 우리 스스로 제공했다는, 환경 파괴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울리며 마무리하는 의미심장한 재난물이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파괴한 자연이 어떤 재난을 가져올 지 고민해 보았나? 익숙한 주제이지만 바이러스 재난에 대한 내용과 괴리감 없이,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하게 담아낸 마무리 연출로써 훌륭했다.
전염병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집중해서 담아낸 영화이기에, 주제에 관심이 없다면 반드시 추천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주제의 시의성이 적절해 보여 권하는 영화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사태를 영화로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 재난 영화 혹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혹은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고찰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 권해보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