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짱이 다이어리] 2025.4.18의 기록
1. 가끔씩 붕- 떠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바로 어제까지 피부를 간지럽히는 햇살 아래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었는데, 오늘은 여민 패딩 사이를 칼날 같은 바람이 쑥 쑥 쑤시고 들어온다. 내리던 비는 기어코 우박 비스무리한 덩어리에서 눈으로까지 바뀌었다. 사계절 뚜렷한 것이 우리 땅의 자랑이라고 배워온 기억이 선명한 내겐, 문득 나도 모르게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닌 낯선 어떤 평행 우주로 치환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국민들이 손으로 뽑았다는 국가의 원수는 바로 그 국민들의 손에 의해 임기를 다 못 채우고 직을 잃었다. 사실 애초에 뽑힌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겨우 8년 전에도 우리가 겪었던 현실이다. 그때도 똑같이 난, 이야기의 시작점부터가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어쩌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지? 똑같은 장소에서 누군가는 탄핵을 또 누군가는 반대를 외치는 모습도 그랬지만, 바로 한 블록만 넘어가도 그 어떤 외침도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이 계속되고 있는 모습도 나에겐 생경했다.
얼마 전엔 꽤나 아침부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잠이 덜 깬 내 목소리를 알아본 친구는 언제까지 그럴 거냐며 타박하다가 이내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만나러 왔다. 자기가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것 같아 미안했다고, 알아서 잘하는 애한테 괜한 잔소리를 했다고. 저녁엔 또 다른 친구도 만났다. 그 역시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나왔다. 다만 이번엔 내가 시간을 낸 쪽에 가까웠다. 그의 시간에 맞추어, 그가 원하는 장소에서, 그의 주도로 이루어진 대화는, 타박도 걱정도 없었지만 뭔가 나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늘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대체로 그와 있으면 나는 자꾸 입을 다물게 된다.
2. 아주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탔다. 밖에서 음악은 잘 안 듣는 편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나 새소리, 차소리, 발소리 같은 소음이 나는 더 좋다. 사실 이때도 굳이 귀에 이어폰을 낀 것은 필요에 의한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음악과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햇살 아래 도시 풍경이 갑자기 너무 아름답다. 가만히 앉아서 원래 내리려던 정류장보다 두 정거장을 더 갔다. 뒤에 다른 일정이 없더라면, 종일 버스를 타고 시내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더라면 참 좋을 텐데. 과거 언젠가의 나는 한 번씩 그런 나날을 보냈었다. 그때 차창 너머로 내가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세상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모두 지치지 않고 아름답게 잘 자라왔을까. 기록하지 않는다면 관찰자가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기록을 의식하는 순간 순수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객관적이란 말을 객관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듯이, 순수한 관찰자는 현실을 벗어난 곳에나 있을 터였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하염없이 버스 여행을 하던 나는 이제 없고, 겨우 두 정거장은 노래 한 곡을 다 들을 정도의 시간도 되지 못했다.
3. "이 그림에서 가장 큰 건 뭘까요?" "이 건물이요?" "아니요. 하늘이 있죠. 그림을 그리려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해요. 사물만이 아닌 배경까지 볼 수 있을 때 균형 잡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이때 그림을 배우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를 보는 일은 어렵다.
화실 야외스케치를 따라가 처음으로 크로키란 것을 그려봤다. 처음이니 당연히 엉망이었는데, 이번에도 찔린 것은 손보다는 눈이었다. "크로키를 선화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면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하죠. 면을 채워나가는 느낌으로 그려보세요. 그러면 좀 더 쉬워질 거예요." 수채화도 마찬가지다. 전체 그림 안에서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어느 한 요소를 끝내주게 그려낸다 하더라도 멋진 그림이 될 수 없다. 문득,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순수한 관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한 장면을 오랜 시간 곱씹어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버스를 좋아했나.
4.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이제 보고 있다. 주변에서 하도 좋다, 눈물이 계속 난다, 말이 많길래 일부러 바쁜 일 끝날 때까지 시작을 안 했다. 그런데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그리 대중적 감성을 보유한 사람이 아니었단 걸. 과장님은 애초에 볼 생각도 없었다 했다. "우리처럼 건조한 사람들과는 안 맞지"라면서 "심지어 너는 나보다 표현도 차가운데, 아직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라더라. 현자다. 그러면서 대체로 20대 중에도 공감하는 사람이 적다더라는 말을 덧붙였던가.
아무튼 기왕 시작한 거 스토리라인을 탐구하는 느낌으로 계속 보긴 하고 있다. 화를 거듭할수록 이 드라마의 키워드를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희생' 아닐까 싶다. 어느 화에선가, '조오련을 꿈꿨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이 시나리오의 최초의 시작점 아니었을까 싶은 장면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삶이 더 많았으리란 걸 안다. 다만 그건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드라마처럼 다 아름다운 희생 만은 아니었을 거다. 난 이게 건조함보다는 현실적 사고의 영향인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해. 드라마까지 현실적이면 피곤해서 이 세상 어떻게 살겠어. 그냥 난 계속 이 드라마 안 본 사람으로 있는 게 나을지도.
5. 언덕길을 오르며 그 너머의 풍경을 상상해보고 있었다. 바람결에 라일락 향이 실려 왔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무딘데 라일락 향은 귀신같이 잘 맡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 여기에 있다고, 이렇게 강렬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존재를 또 본 적이 없다. 그래선지 라일락 향을 맡으면 어딘가 안심이 된다. 붕- 떠있는 듯하던 발이 다시 세상에 붙는다. 나의 첫 자취집도 들어가는 입구 양쪽으로 늘어선 라일락을 보고 마음을 굳혔었다. 다만 이 계절이 너무 짧다. 열심히 발을 땅에 붙일 수 있을 때,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