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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짱이 컴백

[개짱이 다이어리] 2025.5.27의 기록

by 배짱없는 베짱이

정작 써야 할 글은 미루고 계속 딴짓을 하다 이 시간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퇴근. 원래대로면 집에 와서 밀린 일들을 끝내고 블로그에 요즘 근황을 쓰려던 것인데, 그 밀린 일들이 계속 잘 안 풀려서 결국 오늘도 이 밤까지 변죽만 울리다 블로그도 늦었네.


입사하고 이 주가 흘렀다. 일 년 만에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에 다시 가입이 되었다. 달에 2만 얼마씩 내던 지역의료보험도 다시 직장가입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에 5월 치 월급도 받았다. 한 달을 꽉 채운 금액도 아닌데 통장의 잔고가 몇 배로 불었다. 그렇다고 노는 동안 돈 버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건 아니었는데. 역시 월급이 최고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내가 눈치 안 보도록 티 안 나게 배려하며 자기들이 돈을 더 썼다. 그때마다 눈치 없는 척 고맙다는 말도 않고 받아먹었었기에 취업턱이라고 부러 생색을 내며 여기저기에 밥을 샀다. 이게 곳간의 인심인가.


입사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약 7년 만의 입사다. 퇴사도 입사도 워낙 많이 해봤기에 언제 어느 조직이라도 금방 적응하고 익숙해질 자신이 있었는데 간과한 게 있었다. 7년 전 입사할 때 직함은 대리였다. 그때까지 모든 회사에 쉽게 적응하고 쉽게 업무를 해나갈 수 있던 건, 잘 모르면서 당당해도 괜찮을 연차와 직급 덕분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출근과 동시에 두 개의 프로젝트를 맡았고, 오늘까지 두 개의 제안서를 만들어서 보냈다. 여태까지의 습관처럼 쉽게 생각하고 대충 마무리해도 적당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고작 이십여 일 치 첫 월급에 배부를 때 알았어야 했다. 그만큼의 비용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는 걸.


분야를 틀어서 갔기 때문이라 핑계 댈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 스스로에게 느낀 실망이 꽤 컸다. 그래도 머리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꽉 막힌 사람이었을 줄이야. 어쩌면 지난 회사의 6년이, 나름 그때도 열심히 고민하며 버텨온 6년이었지만, 어떤 면으론 뻗어나간 내 생각의 도로를 조금씩 무너트리고 그 길을 막아버리는 6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막힌 도로를 뚫기 시작했다. 정으로 쪼아서 바위를 부수고, 떨어지는 잔해를 치우고, 여전히 도로를 막아선 돌들을 다 치우지 못했지만 그 틈 너머로 내가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음을 확인했다. 막상 다가가면 사라질 신기루일지라도, 이미 연식이 너무 오래된 올드카라 할지라도, 이 길에 들어선 이상 그 도로를 달려보아야겠다.


머리가 안되면 몸으로 승부를 보면 된다. 일단 잠을 줄이고 그나마 줄인 잠을 자면서도 일 생각을 했다. 절댓값을 높이니 산출물의 구색이 그래도 갖춰진다. 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며 도파민이 터질 뻔했다. (일에서 도파민이라니, 말도 안 될 소리지. 자제시켰다.) 그럼에도 다만, 막혀 있는 여러 길 중 이 도로를 뚫고 가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틈틈이 나를 괴롭혔는데 일이 다 끝난 뒤에야 '의미의 편집권은 나에게 있다'는 <에디토리얼 씽킹>의 한 구절을 다시 발견한 거다. 그렇구나, 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구나. 내가 선택한 길을 내가 안 믿어줄 뻔했다. 다행히 준비한 내용은 남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구색이었나 보다. 또 도파민을 느낄 뻔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지금의 이 시간은 모두 '숏텀'의 과정이다. 거진 한 달 만에 모인 오프더트랙 팀에서 각자의 근황을 공유하는 시간에, 숏텀으로 회사의 입사 소식을, 롱텀으로 방탈출 게임의 오픈 소식을 알렸다. 모두가 롱텀과 숏텀이 바뀐 것 아니냐며 의아해했는데 이번에야 말로 나는 당당했다. 지금 이 회사를 택한 것도 결국엔 내 롱텀을 잘 구축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 때문이었으니까.


브런치의 게임제작기도 그렇고, 매거진의 서문도 그렇고, 이미 마감이 지났음에도 못 끝낸 과제가 많은데 (허허 생명 같은 마감을...)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면서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지금의 이 생각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아 쓰는 김에 어제 방탈출 게임을 하고 간 지인과 치맥을 먹으며 나눈 대화도 적으면 좋은데. ...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일단 오늘은 좀 일찍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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