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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Dec 09. 2018

41. 할 수 없다면 먹고 마시고 즐기자

2017.7.20. 몬타니타, 에콰도르(D +164)

에콰도르(Ecuador). 이름부터 '적도'라는 뜻을 가진 이 나라는 남미 대륙의 서쪽면에서 태평양을 접하고 내륙으로는 페루와 콜롬비아의 사이에 끼어있다. 여행지로는 보통 수도인 키토(Quito)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갈라파고스 제도, '세상의 끝 그네'가 있는 액티비티의 천국 바뇨스(Baños)가 유명하다. 그리고 남미 최고의 서핑 스팟이라는 몬타니타(Montanita) 해변 역시 에콰도르의 명소이다.




멀지 않은 과거에 몬타니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곳을 떠나온 뒤에야 알았다. 혹등고래의 포인트로 고래를 보러 나가는 투어가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단지 페루의 완차코, 만코라를 거쳐오며 서핑에 빠져버린게 우리가 이곳을 에콰도르의 첫 번째 도시로 정한 이유였다.


일행이 다시 네 명이 되었기에 에어비앤비로 미리 우리끼리 쓸 숙소를 찾았다. 서핑의 마을인 만큼 서퍼가 호스트로 있고 바닷가도 가깝다는 작은 숙소가 적당해 보였다. 마침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그러나 주변 시세에 비해 왜인지 많이 저렴할 땐, 그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국경을 넘으면서 우리는 조금 예민해졌다. 이대로 가면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아 빡빡한 시간에도 가게에 들러 포장해왔던 만코라의 서퍼버거는 버스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말에 결국 버려야 했고, 늦은 밤 출국 사무소에선 R이 체류 기간을 넘어서 머물렀다는 국경 직원의 억지 때문에 벌금을 물고서야 출국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과야킬(Guayaquil)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탈 때까진 괜찮았는데, 바닷가에 가까워올수록 이번엔 날씨가 우리를 괴롭혔다. 먹구름이 가득,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녕 몬타니타? 너 첫인상이 왜그래?


터미널 같지도 않은 길거리 한가운데서 내려주는 일이라면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잔뜩 뻘밭으로 변해버린 도로에서 모든 짐을 들고 숙소를 찾는 일은 조금 달랐다. 오프라인 지도 앱에 위치를 저장해 놓았지만 도로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이곳에선 무용지물. 비슷한 위치를 뱅뱅 돌다가 주저앉고 싶어 졌을 때, 새롭게 합류한 동행 I가 근처 호스텔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했다. 온 신발과 캐리어와 마음에 까지 진흙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뒤에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와, 여기서 자다간 병 걸리겠네."

숙소를 본 R의 첫마디다. 같이 숙소를 골랐고, 같이 고생하면서 어렵게 도착한 곳을 보자마자 대뜸 부정적인 말부터 꺼내버리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하룻밤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애써 긍정하려던 나머지 셋도 R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긴 어려웠다. 방도 침대도 나무로 이루어진 그 방은 언제 마지막으로 사람이 묵었는지도 모르게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결국 우리는 이날 이중으로 숙소를 잡아버리고 만다. 넉살 좋게 웃으며 같이 서핑을 하면 되겠다는 호스트 커플에게 차마 너네 방이 너무 안 좋으니 환불해줄 수 있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몬타니타는 우리가 머무는 내내 한 번도 맑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새롭게 잡은 숙소는 조금 더 시내 쪽 번화가의 한가운데, 1층은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그 위쪽으로 숙박업을 겸하는 집이었다. 바닷가에선 조금 거리가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주방도 없었지만, 방과 화장실이 훨씬 깨끗하고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좋았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몬타니타는 지금까지 머물렀던 어떤 장소보다 유흥의 도시 같은 곳이었다. 사방으로 화려한 펍과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해안가 쪽엔 커다란 클럽도 있었다. 지도를 보니 칵테일 거리가 따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마치 포장마차처럼 노상에 늘어선 간이 칵테일바가 골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왔으니 일단 먹고 마시고 즐기자. 이렇게 놀기 좋은 곳에서 계속 다운된 기분을 가지고 침울해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맛집에는 또 유난히 촉이 좋은 K가 이번에도 불쑥 들어간 곳은 마침 트립어드바이저에도 소개된 레스토랑이란다. 가볍게 햄버거와 칵테일 한 잔. 역시 배가 부르고 나니 기분이 좋다. 조금 진흙길이면 어때, 어차피 바다에도 들어갈 거 씻으면 돼지. 숙소 좀 다시 잡을 수도 있지 어때, 그래도 처음 잡은 숙소가 많이 저렴해서 다행이야.

사실 이곳은 정말 작은 마을이라 바닷가에서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면 딱히 다른 즐길거리가 없다. 마을을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나면 또다시 뭔가를 먹고 마시는 일밖에 할 게 없는 동네.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 뭐. 그나마 펍과 레스토랑이 많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는 길거리 호객꾼을 친구라고 부르며 그의 가게에 들어가 같이 맥주를 마실 정도로 신이 났다. (정확히는 취했다.) 소소하게 화려한 밤의 연속이랄까. 매일 밤 또 다른 식당의 맛있는 음식, 안 마셔본 칵테일을 찾아 마시는 것도 재미였다. 그러고보면 이 긴 여행길에 한번쯤은 이런날도 있어야지 않을까. 유명하다는 장소를 찾아 다니고 호스텔에서 요리를 해먹고, 그동안 난 너무 부지런했다.

이따금씩 비가 꾸준히 내려 떠나는 날까지도 바닥이 질었는데 별로 문제가 되진 않았다. 중요한 건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이 장소를 최대한 즐기는 것뿐.



바다는 없었지만 화려했던 나날들.



아참, 우리 여기에 서핑하러 왔었지. 몬타니타에서 서핑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다. 서핑은 딱 한 번 했다. 파도는 물론 사람까지 친절했던 페루에 비해 이곳은 모든 것이 또 나를 힘들게 했다.

여기가 남미에서 서핑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들었는데 날씨 때문인지 일단 파도가 너무 세서 나 같은 초보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잘하는 사람들에겐 적당히 센 파도가 좋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세다.) 강사는 심지어 그 크고 거센 파도에 마치 집어던지듯이 나의 서핑보드를 밀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거친 파도에 나동그라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를 보고 있지도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가서 막 따졌더니 힘드니? 그만할래?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게 전부인데 별 수 있나, 응, 그만할래 하고 나왔다. 이후로 다시는 서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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