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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Feb 14. 2019

내 앞에 놓인 선택지란

[고독한 개짱이] 시장 고로케


처음으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잔뜩 궁지에 몰려서 이제 머리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봐둔 매물 중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곳을 빌미삼아 부동산에 말을 트고, 이후로 계속 연락을 취하는 작전을 짜기로 했다. 두 군데에 연락을 했는데, 한 곳은 대출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응답이 왔고, 다른 한 곳은 주말이 지나는대로 집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집 나갔는데."


중개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한마디를 던졌다. 잔뜩 긴장하고 또 반쯤은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달려간 나였다. 먼저 잡는게 임자라는 말이야 많이 들었지만 그럼 오지 말라고 알려주기라도 했어야는거 아닌가. 아니면 부동산 시장의 생리가 원래 이런데 내가 몰랐던 건가.

평소엔 따져 묻기도 어디서 뒤지진 않는데 여기선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볼만한 곳이 없겠느냐, 하니 옆자리 앉아있던 다른 분이 가까이에 하나 가보자며 나를 데리고 나갔다. 상가건물의 4층이라는 그곳은 한 십년은 아무도 안 살았던 것처럼 어둡고 퀘퀘했다. 큰 방의 낡은 장판에는 붙이는 바퀴벌레 약이 떼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실의에 빠져 돌아가는 길, 이렇게 그대로 들어갈 순 없어 큰 길을 따라 걸으며 보이는 부동산마다 닥치고 들어갔다. 뭐 어찌됐든 한번 부딫쳐보니 해볼만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성과가 있었다. 당장은 아니라도 좋으니 좋은 매물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원하는 조건과 연락처를 남기고 나왔다. 대부분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까지도 해줬다.



걷다보니 배가 고프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언젠가 맛있게 먹었던 버터 통오징어구이 커리를 파는 식당이 나온다. 달고 짭조롬하니 버터가 잔뜩 발린 부드럽고 통통한 오징어의 식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발길을 옮기려는 찰나 무언가가 나를 붙잡았다. 이렇게 먹고 싶은거 다 먹으면서 언제 원하는 집을 구할래?  

그래봤자 겨우 만 이천원인데. 이거 아낀다고 내가 엄청나게 좋은 집에 들어갈 수 있을거 같아? 항변을 해보았지만 결국 내 마음속 자괴감의 설득을 이겨내지 못했다. 잔뜩 풀이 죽어서 커리를 포기하는 대신 시장에 들러 고로케를 샀다. 딱 내 배를 채울 만큼만 사려고 했는데 이럴때일수록 먹고 싶은건 또 왜이렇게 많은지.

집에 오자마자 커다란 접시에 고로케를 잘라서 수북하게 쌓았다. 감자, 단팥, 김치, 카레 온갖 재료로 속이 가득한 빵은 그대로도 맛있을텐데 그걸 심지어 튀겨냈으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쫀득 도대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고로케는 내가 아는한 최고의 빵이다. 조각조각 내어 여러가지 맛을 골라 먹으며 입안에서 쉴새 없이 단짠의 세계를 오갔다. 얼마나 푸짐하게 샀으면 가족들과 나눠 먹고도 몇조각이 남았다.


그렇게 만족스러웠던 오늘의 저녁은 사천원. 평소에도 고로케는 좋아하고 또 종종 먹는 메뉴이긴 한데, 이번만큼은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고른 메뉴이다 보니 기분이 괜히 씁쓸하다. 집도, 내 생활도, 조금 더 아끼고 내가 기준을 낮추면 해결될 일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난 어디까지 더 낮춰야 할까. 고로케의 속을 고르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내게도 선택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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