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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Feb 15. 2019

내 접시엔 내 맘대로

[고독한 개짱이] 뷔페


학교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제 주위에 결혼할 사람들은 거진 다 가서 이런 행사도 많진 않다. 달에 한 번씩은 누군가의 결혼식 혹은 아이의 돌잔치가 있던 절정의 언덕을 넘어갔건만 난 여전히 부모님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누군가의 딸로서 살고 있다.


어쨌든, 덕분에 꽤 오랜만에 학교 선후배가 모이는 자리가 마련됐다. 마지막으로 본 게 2~3년은 더 된 것도 같은데 다들 편하게 인사를 나누는 게 마치 어제도 본 사람들 같아 기분이 좋다, 그랬는데.

"너 아직도 그 동네 사니?" 서로의 안부를 나누다가 학창 시절 비슷한 동네에 살았던 선배가 문득 내게 물었다. "응. 근데 이제 이사하려고." "어디로? 혼자 나온다는 거야?" "회사 근처로. 나도 이제 독립해야지." 갑자기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이 됐다.


네가 아직 세상을 모르는구나, 부터 시작해서, 젖은 나뭇잎처럼 결혼하기 전까진 부모님 곁에 딱 붙어 있어야 한다는 충고가 쏟아져 나왔다. 학교 때문에 일찌감치 지방에서 올라와 어쩔 수 없이 나와 살았다는 누군가는 서울에 살면서 왜 굳이 나오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어쨌든 대부분은 이미 학창 시절부터 일찌감치 독립을 해서 나와있거나 지금은 결혼해서 본인들만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의 위치가 독립해서 나와 살기에 조금 비싼 동네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몇 년 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이런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들은 이미 다 해봐 놓고, 왜 꼭 해본 사람들이 하지 말라느냐고 항변을 해봤지만 내 기분만 애매해졌다.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번째 잔소리의 대상이 된 선배 하나와, 나와 비슷하게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또 다른 선배 한 명만이 조용히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아무거나 뷔페 사진



어려선 뷔페를 좋아했다. 지금이야 그렇게 큰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한식, 양식, 일식 할 것 없이 가득 차려진 요리를 앞에 두고 내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꿈의 세계였다. 그래도 결혼식 뷔페는 왠지 맛이 덜하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웬만한 레스토랑 못지않은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어 놀라기도 한다. 시간대별로 빡빡한 결혼식을 보러 온 수많은 하객들이 뒤섞이는 통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가 없어서 그렇지.


샐러드 종류별로 조금씩, 그리고 치킨을, 또 내가 좋아하는 스시와 육회도 담았다. 보니까 갑자기 당기는 양념갈비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장르 구분 없이 아무거나 내가 먹고 싶은 걸 골라먹어도 되는 시간. 섞어먹어도 되고 또 먹어도 되고, 먹다가 아니면 그만 먹어도 되는 이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결혼식 뷔페를 먹으며 난 이제 정말 생각만 하지 말고 진짜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든 찾아가든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전까지는 한 달이 넘게 컴퓨터로 매물을 찾고 눈팅만 하며 내가 진짜 나갈 수 있을까,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고, 그래서 오히려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고 나니 어떻게든 성공해내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물론 그래서 연락했던 첫 번째 부동산에서 대차게 까이고(?) 말았지만 말이다.


조금 더 뷔페 같았으면 좋겠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또 다른 것도 있으니 서로 원하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왜 고기를 안 먹고 샐러드만 먹느냐고 따지지 않는. 그냥 쟤는 샐러드를 좋아하나 보구나 인정할 수 있는. 물론 내가 몰랐던 더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준다면 그것도 행복할 거다. 그저 추천해 준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을 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 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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