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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pr 13. 2019

철저히 사랑이 없는 세상의 잔인함

영화 <러브리스>


(*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Loveless. 사랑이 없는. 제목부터 참 직설적인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사랑이 없는 한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아내 제냐,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는 듯 응, 아니 라는 대답조차 제대로 하는 법이 없는 남편 보리스. 둘은 곧 이혼을 앞두고 있다. 같이 살고 있는 그 집만 팔리면 당장이라도 갈라서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뭐 사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헤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자는 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나. 심지어 이들은 이미 서로 다른 애인도 있다. 어서 이혼을 하고 각자를 원하는 상대에게로 떠나는 게 깨끗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걸림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12살짜리 아들 알로샤. 부부는 그날도 아들을 누가 데려갈 것인지를 놓고 싸웠다. 서로에게 떠넘기려 언성을 높였고, 마치 공포영화의 반전처럼 알로샤는 눈물을 삼키며 숨죽인 채 그 둘의 대화를 그대로 다 들어버렸다. 그리고 일이 터지고 만다.



부부는 아들 알로샤가 사라진 사실을 적어도 이틀이나 지난 뒤에 알았다. 그제야 번쩍 정신이라도 차린 듯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라진 아이를 찾아보려 하지만, 부부는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주로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처음부터 알로샤에 대한 힌트를 많이 주지 않았던 영화는, 알로샤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도 사라진 아이가 아닌 그 외적인 요소들에 집중한다. 실종 아동을 수색할 의지조차 안 보이는 무책임한 경찰, 경찰과 대비되는 정부 밖 봉사단체의 꼼꼼함과 성실함, 뒤틀린 성격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제냐의 집안 환경, 답답한 성격의 보리스를 더 옭아매는 회사의 분위기 등.

그 속에서 정작 사랑이 없는 세상에 방치된 아이의 심정이나 외로움은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어른을 위한 영화다.



영화에 대해 마침내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사랑이 없는 세상의 쓸쓸함을 보여주려 했다지만, 그걸 위해 영화는 기어코 알로샤를 도구로 소모해버리고 만 느낌이다. 아이의 우는 얼굴은 어른들에게 고통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된 느낌이었다. 그 격렬했던 고통 이후 아이는 한 번도 그의 목소리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고, 결국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말았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겨울 러시아의 아름답지만 쓸쓸한 풍경도 괴롭고 외로웠을 알로샤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사랑이 없는' 세상을 그리고 싶은 영화의 분위기를 돋보이기 위한 장식으로 느껴졌달까.  


끝내 알로샤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이를 방치하고 만 어른들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영화 이후의 일까지 짐작할 수야 없겠지만, 이후에도 사랑을 버리고 버림받을지언정 이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잔인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현실 같다. 영화에서까지 꼭 이래야 했을까, 말하고자 한 세계를 너무 그대로 보여줘서 안타까운 영화 <러브리스>였다.



*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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