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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ug 08. 2023

시원하게 말대꾸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모 윌렘스, 비둘기는 목욕이 필요해요, 살림어린이, 2014.

  엄마가 질문을 하면 나는 대답을 한다. 엄마와 나를 바꿔도 마찬가지다. 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하면 엄마는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질문과 대답은 짝꿍이다. 설령 그 대답이 "뭐라고 말 못 하겠어"와 같은 모호한 의견이거나 무응답일지라도 말이다. "대답을 못 하겠네"도 대답이다.




  어린 나는 물음표가 들어간 질문을 들으면 대답하려 애썼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잘했어 못 했어?"

  엄마가 날 혼낼 때 자주 꺼내던 말이다.

  "못 했어."

  "뭘 못했어?"

  "숙제 다 안 하고 놀이터 간 거 잘 못했어."

  "그걸 알면서 그래? 알면서 왜 그랬어?"

  "친구들이랑 약속한 시간 다 돼서. 다녀와서 하려고 그랬어."

  "넌 왜 꼬박꼬박 말대꾸니?"

  

  나는 지금 엄마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엄마는 어느 순간 급발진해서 목청을 높였다.

  

  넌 왜 꼭 이렇게 말대꾸니?

  어른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할래?


  말대답과 말대꾸의 차이를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질문에 대답을 안 하면 "대답 안 해?"하고 앙칼지게 쏘아댔을 거면서, 엄마는 제멋대로였다. 제멋대로인 엄마랑 대화를 하는 게 힘이 들었다. 맥락 없이 혼나는 게 힘들었다. 숙제를 다 못하고 나간 것에 대한 징벌이라거나 훈육이 아니었다. 엄마의 초점은 늘 내 태도란 식이었다. 내 태도가 문제라는 식, 내 태도가 글러먹었다는 식, 내 태도가 언제나 별로였다는 식이었다.

   "너느은~ 꼭~~"하는 신경질적인 엄마의 말투와 억양은 여전히 내 귓가에 생생하다.  


  그래서였을까. 사춘기가 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엄마 질문에 대답 안 하기였다. 이상하게 저절로 그럴 용기 아닌 용기가 생기더라.


  "이다! 너 어디가?"

  하고 묻는 엄마를 뒤로하고 쌩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사춘기가 '겁대가리'를 상실시켰다. 사춘기 뒤에 숨어 나는 실컷 엄마 질문을 무시했다. 엄마가 내게 짜증을 덜 냈다. 내 머리가 커졌다고 뒤에서 심심치 않게 내 흉을 보는 걸 알고 있었다. 특별히 엇나가거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던 짧은 사춘기 시절이었지만, 엄마 말에 말대꾸도 말대답도 안 하고 아예 입을 닫고 살던 그 시절. 나는 엄마에게 작은 복수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재잘재잘 엄마에게 떠드는 걸 볼 때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윽박지르지 않는 어른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 특유의 맹랑한 질문도 귀엽다. 가령 내 팔자주름을 보고 "이게 뭐예요? 어른들은 왜 이런 게 있어요?"라는 질문처럼 말이다.

 

  쉬지 않고 떠들고,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고, 머릿속에 스치는 모든 생각을 입 밖으로 다 내뱉겠다는 듯이 온갖 말을 해대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말을 잘했다. 그래서 주변 어른들은 내 얘기가 너무 재밌다고 꼬마애가 이리 말을 잘하는 걸 처음 본다며 변호사를 해보라고 했었다. 변호사가 뭐냐고 물으니, 너 같이 말 잘하는 사람이 하는 직업이라고 어떤 어른이 대답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 그렇게 나는 잠시 잠깐 변호사의 꿈을 꿨었다.

  

  재잘재잘 종알종알 떠들고 싶은 내 욕구는 엄마의 잦은 한숨, 말대꾸하지 말라는 신경질, 엄마아빠의 말다툼 속에서 고요히 사라져 갔다. 주변이 온통 시끄러우니 나라도 조용해야 했다. 나라도 입 다물고 세상을 고요하게 만들어야 했다.


  <비둘기는 목욕이 필요해요>에서 비둘기는 왜 자신에게 목욕이 필요한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비둘기가 더럽다는 것도 선입견일 뿐이라고 맹랑하게 대답한다. 목욕물을 받을 때는 뜨겁다 차갑다, 차갑다 뜨겁다 요구도 다양하고 변덕도 잦다. 귀엽다.


  

  나는 그간 사람 마음이 변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뜨겁다, 말해놓고 다시 차갑다, 말하는 건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는. 변덕 같이, 자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건 늘 어려웠다. 상대 기분을 살피어야 내 안전이 보장되는 일상에서, 나의 사소한 요구는 차라리 내가 묵살하는 게 편했다.


  <비둘기는 목욕이 필요해요>를 처음 읽었을 때, 그래서 비둘기가 너무 좋았다. 나도 이런 그림책을 써볼 상상을 해본다. 말대꾸만 하는 책인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대꾸를 다 모아 모아 모아서, 책갈피갈피마다 새겨 넣는 거다.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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