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목욕탕
5. 여탕
내 출생지에 관한 의문을 마무리하기 전에 말이 터진 목욕 얘기를 조금 더 해야 한다. 한겨울 아들 넷을 부엌 바닥에서 목욕을 시키는 일이 한국전쟁 이후에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간이 지난 이후 우리 가족도 목욕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대중목욕탕이 생긴 것이다.
아버지는 바빴다. 아버지 직장인 자동차 정비공장은 가까웠다. 그곳 또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벽에 출근했다. 가끔 점심을 드시러 집에 오기도 했지만 어두워진 후에야 퇴근하였다. 형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다음 내가 학교에 들어가고 그렇게 사내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아이들 목욕에 관한 의무가 아버지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많은 남자들이 가진 기억처럼 우리도 여자 목욕탕에 다녔다.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 안이 지금도 어렴풋하지만 그 장면은 일종의 지옥도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갈 때면 일종의 굳은 각오를 해야 했다. 한동안 아들 넷이 함께 같은 각오를 했다. 세 시간 동안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문이 열리면 먼저 쏟아지는 것은 소리였다. 출렁이는 물, 바가지로 뿌려지는 물소리, 아이들의 비명소리, 어른들의 이야기 나누는 소리들, 그리고 이 소리들이 울리고 울려 몇 겹으로 겹쳐진 소리들. 벽 높은 곳에 붙은 창문들은 애써 빛을 쏟아내고 있지만 수증기와 엉겨 바닥까지 내려오지 못하고 그저 구름처럼 떠돌 뿐이었다. 그 아래 검은 그림자로 오가는 많은 사람들, 앉아 열심히 몸을 문지르는 사람들. 불투명한 세상에 아우성과 비명을 가득한 무서운 공간이었다.
그곳에 들어가 채 적응도 하지 전에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 충분히 몸을 불려야 했다. 그렇게 한 명씩 엄마에게 불려 가 비명과 함께 때를 밀고 나면 온몸은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다시 뜨거운 탕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는 마치 마녀의 수프 냄비 앞에 선 헨젤과 그레텔이 된 기분이었다. 거친 때수건에 쓸린 피부는 아프고 쓰린데 뜨거운 탕에서 시작되는 이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했다.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서있으면 등짝에 다시 불이 났다. 엄마의 손바닥이 사정없이 내리치는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사내 넷이 두 번씩 때를 밀고 나서야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거의 탈진에 이르는 순간에 되어서야 놀 수 있었다. 아니 놀 수 있다는 사실보다 찬물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이제 살았다는 서광이었다. 나머지 한 시간은 엄마 스스로 목욕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덥고 습한 곳에서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세 시간을 버티는 일 자체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네 아이의 때를 두 번씩 밀고 자신의 몸을 씻는 일은 천하장사 급의 힘과 마라토너 급의 지구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6. 그리고 남탕
사내아이들이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뀐 상황은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극적인 변화였다. 목욕탕에 들어서는 사람의 수는 다섯, 변함이 없었으나, 지옥을 연상시키는 세 시간의 과정이 채 오십 분도 걸리지 않는 놀이가 되었다. 일단 환경은 남탕으로 바뀌었다. 목욕탕의 구조는 같았을 것이나 그렇게 뜨겁지 않았고 수증기도 덜 했다. 들어가자마자 찬물에 뛰어들고 이리저리 뛰며 놀아도 아버지로부터 별 제재는 없었다. 아버지 또한 굵은 때가 둥둥 떠다니는 뜨거운 탕에서 몸을 불리라고 말은 했지만 그저 형식적이었다. 때를 밀 순서가 되어 아버지 앞에 앉았을 때 몸이 차갑지만 않으면 무사통과였다. 때를 미는 손길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마저도 엄마가 세밀하게 검사하는 손등과 목 부위에 집중하여 몇 번 오르내리면 끝이었다. 아버지께서 의식적으로 인도주의적인 때밀이를 했다기보다는 때를 미는 과정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인생관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건성으로 하는 때밀이는 좋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넷 사내아이들을 압도하는 일은 탕을 나와 물기를 닦고 나면 손에 쥐어주는 우유 한 팩이었다. 남탕에서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서 천국이 완성되었다. 세상에 그렇게 달고 시원한 음료는 없었다. 옷을 다 입고 목욕탕을 나서고 나서도 남자 다섯은 동네를 몇 바퀴 산책하고는 집에 들어갔다. 모자란 목욕시간에 대한 엄마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도피의 시간이었다.
다시 나를 낳을 예정인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결혼 후, 형을 낳고 군에 갔다 온 아버지는 다시 서울로 먼저 떠났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분투하던 아버지는 드디어 엄마와 형을 서울로 데려 온 것이다. 엄마는 옆에 남편도 없이 모진 시집살이를 하다가 남편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온 것이다. 물론 먼 친척의 문간방이었을 터이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엄마가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렇게 기쁘기도 했으나 고단하기도 한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생겼고, 엄마는 나를 낳기 위해, 그리고 산후에 얼마간 몸조리를 하기 위해 친정에 내려가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