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날
7. 눈 쌓인 날
내게 작은 딜레마가 생긴 건 이 시점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여기저기 문학잡지에 글을 실을 때에는 대개 약력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약력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몇 년에,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밝힌다. 이때마다 나는 고민을 했다. 내 출생지는 어디인가? 생활의 근거지로 터를 잡았던 서울인가? 아니면 내가 태어난 산부인과 병원이 있던 김제인가? 출생지를 특정하는 일에 있어 속지주의를 적용한다면 나는 김제 출생이고 속인주의를 적용한다면 주소지이면서 부모의 생활 근거지였던 서울이 맞다. 그러나 매번 이런 사정을 다 헤아리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번은 약력에 서울 출생이라고 쓴 책을 보고는 동네 사람 하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다시 쳐다봤다.
“생긴 건 안 그른디, 서울 사람인 게벼? 논농사 백 마지기는 짓는 사람 같은디!”
젊은 시절, 막걸리를 된통 마신 하루, 술병이 고약하게 났다. 게워낼 수 있는 것은 모두 게웠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얼마 안 되는 인생마저 게워지는 듯했다. 지금도 주당이지만 그 기억 때문에 막걸리는 한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 이런 나를 보고는 생김새로 보면 촌에서 막걸리로 목욕이라도 할 것 같은 사람이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을 많이 봤다.
서울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향에 들른 아버지는 꼭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따, 서울 수돗물 마시드니, 면상이 뽀얗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네, 잉!”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살고는 지금 사는 지방의 작은 도시로 내려온 나는 왜 반대의 이야기를 듣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다음 기억은 내가 태어나는 과정 이야기이다. 당시 시골 산부인과에게 지금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을 기대하는 일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병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니 뭔가 의료적인 분위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간호사 머리 위에 흰색 간호사 캡 정도만 있어도 만족할만한 환경이었던 듯싶다. 물론 나는 기억이 없다.
엄마의 산통 소식을 듣고 아버지도 시골에 내려와 병원을 찾았다. 출산은 입원실에서 진행되었다. 산통이 심해지고 시간이 지남에도 아기가 나오지 않자 의사는 아버지를 온돌방 입원실로 불렀다. 그리고 장비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아버지 표현 그대로 옮기자면 ‘수세식 변기 막혔을 때 뚫기 위해 펌프질을 하는 압축 관통기’하고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긴 산통 끝에 아기의 머리 일부분이 엄마 몸 밖으로 나왔지만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아 산모의 고통이 심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뭘 먹고 이렇게 뱃속에서 아기를 키웠데요? 머리 정말 크네.”
아버지는 ‘뚫어뻥’을 닮은 그 장비로 아기의 머리를, 바이스로 빠지지 않는 나사를 물 듯 잡았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힘을 주어 당겼다. 다음 순간 뭔가 미끌, 하면서 장비는 빠져버렸고 아버지는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아기는 미동도 없었다. 이 일로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비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못된 자식이 되었다.
순간, 아기를 당기던 아버지도, 온갖 고통을 참으며 힘을 주던 엄마도, 옆에 있던 의사도, 하얀 간호사 캡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간호사도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이 가능하나, 그중 누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전언도 있다. 물론 힘겹게 나오던 나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었지만, 기억은 없고 싹수는 노래졌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나왔지만 장비의 충격 탓으로 머리가 쑥떡 늘어나듯 길게 변형되었다고 했다. 텔레비전에서 머리가 긴 외계인 상상도를 보면서 누구의 신생아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몇 있다. 그렇게 인체의 신비는 하루 정도 지나서 아이를 그냥 보통의 머리 큰 아기로 되돌려놓았다.
나, 그 머리 큰 아기를 처음 안은 외할머니는 흠씬 놀랐다. 당신도 여덟 번, 또는 그 이상의 출산을 겪었지만 이리 머리 큰 아기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하얗게 함박눈 쌓인 날 태어나 눈이 녹기 전에 외갓집에 당도한 아기를 외할머니는 쌀가마니 다는 저울에 올려놓고 근수를 재었다. 지금으로 환산해서 4Kg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깊은숨을 내쉬고 살짝 돌아 누우며 평균을 훌쩍 넘어서는 무게를 줄이려 노력했다. 이 사건은 선명히 기억난다. 지금도 하는 일이니까.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