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먼지
8. 한겨울 초저녁
엄마는 일흔여섯, 길지도 아주 짧지도 않은 생을 살았다. 엄마 폐에 종양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때는 2010년에서 2011년 사이로 기억된다.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잠깐 집에 들러 엄마에게 얼굴을 비추고는 서울 사는 친구들과 잡아놓은 술자리로 향했다. 지방 소도시로 이사 가고 나서 서울과는 볼일이라도 생겨야 발을 디딜 수 있는 거리가 생겼고, 일이라는 핑계라도 있어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올 올 일이 생기면 친구와의 약속도 미리 잡았다. 술자리 때문에 일부러 서울에 오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마지막 기차를 타고 집에 가려면 초저녁부터 집중적으로 마셔야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술잔이 두어 순배나 돌았을까? 초저녁이었고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 막 속도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엄마 폐에 안 좋은 덩어리가 있단다.”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아버지는 원래 그랬다. 말년에 치매기가 있기 전까지는 전화도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부득 통화를 할 경우에도 당신 얘기만 다 하면 상대방의 답을 들을 것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집이었다. 어느 겨울 골목에서 신나게 뛰어놀다 집에 들어와 언 발을 안방 아랫목에 집어넣으면 그렇게 뜨듯할 수가 없었다. 그 두터운 솜이불 아래 딸가닥 딸가닥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양은 밥통이다. 자동으로 밥을 하고 그 밥의 온기를 따듯하게 지키는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 한 끼를 위해 연탄아궁이에 솥을 올려 많은 밥을 하고는, 따듯한 다음 끼니를 위해 큰 양은 밥통에 밥을 담아 아랫목 이불 아래에 넣어두었다. 물론 아버지를 위한 밥이었을 수도 있고 늦게 들어오는 형을 위한 밥일 수도 있었지만 그 추운 초저녁, 시린 발끝에 밥통이 걸리면 배가 고팠다. 그러면 발로 밥통을 슬쩍 이불 바깥으로 밀어내고는 뚜껑을 열어 손가락으로 밥을 퍼 입에 넣었다. 그렇게 오래 오물오물 사탕처럼 빨아먹는 밥은 달았다. 아주 달았다. 그리고 졸렸다. 이불속에서 깜박 졸고 깨어나는 한겨울 초저녁은 이 세상이 아니었다.
작은 안방 창은, 창호지로 발라 미닫이로 여는 창 한가운데는 아기 볼 넓이의 정사각형 유리조각이 붙어있었다. 문을 열지 않고 밖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숨통 같은 것이었다.
창호지를 바른 창을 통과해 대각선으로 방바닥까지 이어지는 초저녁 겨울 햇살과 그 빛 막대기 안에서 찬찬히 떠도는 먼지들. 달가닥 달가닥 부엌에서 전해지는 엄마의 소리. 등에서 올라오는 온기는 온몸을 설탕처럼 녹이고, 이렇게 다른 세상의 것 같은 석양은 어린 영혼을 휘잡아 흔들었다.
어느 외국의 전설에 따르면 코 아래 인중은 전생의 기억, 이번 생에 미리 알아서는 안 되는 기억을 지우려 천사가 손가락으로 대어 생긴 흉터라고 했다. 코 아래가 간지러웠던 그 겨울의 저녁은 그렇게 기억하지 말아야 할 전생을 남몰래 토렴해내 들춰보는 비밀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누런 햇볕은 이 세상을 현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고 이전 세상을 저기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작은 아파트 베란다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엄마는 거기 어딘가를 지나가셨을 것이다. 뒷모습으로 지나갔는지 옆모습으로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혼자 누워있던 그 아랫목에는 소란스러운 쌍둥이 동생도 없었다. 나가 놀고 있었을 일이지만, 아니면 흙 묻은 주먹을 풀지도 못하고 옆에서 곤히 자고 있을 일이었지만, 아득한 그 자리에 나는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