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허벅지
10. 아버지의 허벅지
본채를 바라보고 서면 왼쪽으로 바닥 낮은 부엌(아, 연탄가스)이 있고 정면에 토방과 작은 마루가 보인다. 마루 아래는 뭔가 무서웠다. 검고 깊은 곳.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면 검은 물을 토해내고는 했다. 마루 왼쪽으로는 안방, 오른쪽으로는 작은방이 붙어있다. 방에서의 삶은 누구나 그렇듯 일일이 들춰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자체가 하나 통째로의 삶이다.
퇴근한 아버지는 안방을 닦았다. 아마도 엄마의 호령이 있어서일 것이지만 겨우 안방만 닦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손에 걸레를 쥐고 엎드려 방을 닦을 때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날렵한 쌍둥이를 비롯해 나까지 덤벼들어 아버지에 등에 올라타려 들러붙는 것이다. 당시 한참 유행했던 서부영화에서 말을 타고 벌이는 묘기들을 선망의 눈으로 봤던 사내아이들에게 자그마한 아버지의 등이 말의 잔등만큼이나 넓고 흥미진진했던 모험의 현장이었다.
하나가 온전히 등을 점령하면 나머지 둘은 종아리 위에 앉아 허벅지를 끌어안고 호시탐탐 모험의 성지를 노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니 뭉그적 걸레를 밀며 방을 돌아다니던 말은 한 번씩 등을 흔들었다. 잠시 주인공이었던 하나는 바닥에 나뒹군다. 추격자의 총탄에 맞은 것이다. 이때 허벅지에 붙어있던 둘 중 더 끈기 있고 날렵한 건맨이 잔등을 점령한다. 한두 평이나 되었을 안방이 서부의 격전지에서 다시 작은 안방으로 돌아오는 때는 부엌에서 출발한 엄마의 격한 목소리가 두어 번 메아리치고 난 후였다. 내 기억에 아버지도 분명 웃고 있었다.
“아이고, 집 무너져!”
딸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는 나는 아버지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아이가 하나인 데다 내 등은 훨씬 넓었다. 그래도 딸아이는 쌍둥이보다 더 잘 떨어졌다.
식사 후 텔레비전이라도 볼라치면 양반다리로 앉은 아버지의 다리에 쌍둥이가 하나씩 올라가 앉았다. 아버지의 허벅지가 둘이기에 동생이 둘인가? 이런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거기까지는 욕심내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몇 달을 병상에 누워있었다. 치매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왜인지 항상 화가 나있는 표정으로 무뚝뚝했다. 점차 손녀 이름도 기억 못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손주들이 오면 웃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했다. 한 번은 30분 동안 그냥 아버지 옆에 앉아있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보지 못했기도 했고 잔소리 꽤나 하는 둘째가 그냥 앉아있으면 무슨 얘기라고 하실 것 같았다. 나는 침대 난간을 붙잡고 멍하게 창밖을 봤다.
‘저 자식이 안 가고 뭐하나’, 흘끔 돌아보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작은 소리로 껌벅이는 텔레비전 너머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20분 흘렀을까, 아버지가 몸을 살짝 돌려 성격 안 좋은 둘째를 빼꼼히 바라보았다.
“왜요?”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너 돈 있냐?”
소고기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가서 고기하고 맥주 좀 사와라.’ 이렇게 심부름을 시킬 때에도 항상 돈을 주었다. ‘저 돈 있어요.’ 당시 삼십대인 아들이 이렇게 답할라 치면 항상 ‘니 놈들이 뭔 돈이 있다고, 앓느니 죽는다.’ 이러면서 넉넉하게 지폐를 내놓았다. 그랬던 양반이 돈 쓸 곳 하나 없는 요양병원에서 가난한 글쟁이 아들한테 돈을 물었다.
“얼마나? 어따 쓰시게?”
아버지는 슬쩍 주변 눈치를 보고는 조용히 답했다.
“있으면 오만 원만 줘봐라.”
먼 곳만 보던 아버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지폐를 손에 쥐자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미소였다.
손주들 오면 주려나, 아니면 간호조무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려나, 환자복 작은 주머니에 지폐를 다져 넣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씩 이렇게 아들들에게 받은 지폐들은 그냥 침대 바닥에서 뒹굴다가 구겨진 채 발견되고는 했다. 그냥 뭔가 갈증이 심했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 고개를 내려가는 마음에 깊은 허기가 졌을 것이다.
이불속에서 드러난 아버지의 허벅지는 마른 겨울 가지 같았다. 우리가 올라가 놀던 그 허벅지는 안타깝게도 작고 약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