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3

괴괴한 향기

by 김병호

4. 괴괴한


겨울은 사정이 다르다. 고무 다라이에 아이들을 담그는 일은 같지만 따듯한 물이 필요했다. 연탄아궁이에 솥을 올리고 물을 끓이면서 주기적으로 더운물을 보충하며 목욕물의 온도를 맞춰야 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장난을 치려하고 엄마는 사정없이 물이 튀는 와중에 아이들의 때를 밀어야 했다. 그래서 목욕하는 날이면 멀리 사는 이모까지 와서 아이들을 붙들었다. 결혼 전이었던 막내 이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엌문은 꽉 닫히고 안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바깥과의 온도 차이로 문에 달린 유리는 작은 물방울로 하얗게 칠해졌으며 이내 얼어붙었다. 꽃을 닮은 얼음무늬를 바라보던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맥없이 쓰러졌다고 했다. 아마도 눈도 허옇게 뒤집었을 것이다. 엄마와 이모는 정신없이 알몸으로 늘어진 나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아마도 추웠을 것이다. 그러나 춥다고 말도 못 했을 것이다. 내입으로 시큼한 김칫국물이 흘러들었던 기억은 흐릿하게 남아있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람에게 신 김칫국물을 먹이는 일은 당시 민간요법이었다. 내가 정확하게 몸으로 기억하는 민간요법이었다.


지금도 연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좀 나이 들면서 엄마의 명령으로 연탄을 갈기 시작했고, 그 시간이 새벽에 걸리면 아주 고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거운 겨울잠을 밀쳐놓고 마루에서 내려와 얼어서 쩍쩍 달라붙는 슬리퍼를 신는 일부터가 공포였다. 다음은 추위를 뚫고 반지하 창고에서 연탄을 들고 오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몸 세포 안의 염색체 모양을 닮았던 연탄집게는 왜 그리 차갑던지. 연탄 두 장이 들어가는 타원형의 양은 연탄 바께스의 고리는 어찌 그리 잘 빠지던지. 허리를 숙이고 내려가야 하는 장독대 아래 반지하 창고는 낮에 내려가도 무서웠다. 그곳으로 내려가면 구멍이 아홉 개라 구공탄이라고 불리던 검은 연탄들이 뒷줄은 같은 키로 도열해있었고 앞줄은 날마다 빠지는 연탄들로 들쭉날쭉이었다.


이제 솥을 들어내고 연탄 뚜껑을 옆으로 치운다. 붉게 타고 있는 연탄의 열기와 독한 연탄가스가 얼굴을 덮친다. 그리 싫지만은 않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비껴 열기를 피하면서 집게를 구멍에 맞춰 위 연탄을 들어내고는 막 가져온 검은 연탄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연탄 화덕 안은 어둡다. 다 타서 연한 살구색으로 변한 아래 연탄은 검은 연탄 옆 빈자리에 놓아야 한다. 이 순서와 위치는 금방 체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주 중요하다. 불씨가 살아있는 위 연탄은 이제 검은 연탄에게 체온을 전달하고 자신은 사그라들기 위해 화덕의 아래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의 어깨 위에 묵직한 검은 연탄이 얹힌다. 마지막으로 이 둘이 같이하는 시간의 길이를 정하는 일이 남았다.

IMG_0717.PNG 열라 구걸해 받은 일러스트: by 도터맨(daughterman: 일명 딸사람)


연탄집게로 위아래 두 연탄의 구멍들끼리 내통을 조절하는 일이다. 아홉 개의 구멍을 모두 정확하게 맞추면 아래의 열기가 금방 새 연탄에 전달되어 둘이 함께 활활 타오른다. 당연히 식어가던 방바닥은 금세 쩔쩔 끓는다. 그러나 연탄의 수명은 그만큼 짧아지는 데다 다음번 연탄을 갈 때에 위아래 탄들이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구멍 사이가 많이 틀어져 내통이 거의 맞지 않으면 열기는 천천히 전달되면서 긴 시간 동안 은근하게 방을 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절약 정신이 과한 순간 아래 연탄은 위 연탄에게 열기의 DNA를 채 전달하지 못하고 생명을 다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면 차갑게 식어버린 방바닥 위에서 덜덜 떨며 잠에서 깨어야 한다. 이때가 지금은 고기를 굽는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번개탄이 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연탄들 사이에 내통도를 조정하는 일은 상황과 목적을 고려한 세밀한 작업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과정이 남았다. 이미 재가 되었지만 아직 따뜻한 연탄을 대문 밖에 내놓는 일이다.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 옆에 연탄재를 쌓고 얼른 들어와 나머지 잠을 즐길 일이지만 못된 사내아이들은 꼭 한 가지 의식을 추가한다. 식지 않은 연탄재에 오줌을 싸 본 사람은 안다. 어떤 소리가 나고 어떻게 김이 오르며 새벽녘 동네를 어떤 괴괴한 냄새가 뒤흔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