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날의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애진 Oct 03. 2020

발들일 수 없는 곳들에 대하여












P는 죽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P 역시 죽은 채였다. 그들은 그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신나서 여기저기 쏘다녔다. 챙길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뿐인 홀가분함에 신난 나머지, P는 자신이 물을 무서워한다는 것도 잊고 겁없이 깊이도 모르는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뛰어들지 못했다. P는 놀랐다. 그의 두 발이 물 속으로 잠기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수면이 그의 발바닥 밑에서 단단하게 찰랑댔다. 그는 그때 차분히 깨달았다. 내가 죽었구나. 그리고 납득했다. 아, 물에 빠져 죽으면 얼마 후에 시체가 둥둥 떠오른다더니. 죽으면 발들일 수 없는 곳이 하나 더 늘어나는구나. 갑자기 또다른 수면이 흔들리고, 그는 눈을 떴다. 꿈이었다. 씻으려고 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드러누워 P는 부력이 모자란 그의 몸을 적셨다. 적셔도, 적셔도, P는 떠오르지 않았다. P는 안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2018.10.2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Her(2013), 7년이 지난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