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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날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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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Apr 17. 2024

내가 아닌 것들 틈으로







 늘 기억해낼 수 있다. 울고 눈을 떠 마주한 세상이 도통 뭔지 영문을 몰랐을 시기를 지나, 눈앞을 자주 지나는 것들이 서서히 친숙하다 느꼈을 시기를 지나, 그것들을 ''와 '내가 아닌 것'들로 구분하기 시작했을 시점도 지나, 날 부르는 목소리를 인지할 수 있게 된 어떤 날도 뛰어 넘어, 내가 처음 복통을 경험했던 날. 신기한 것은 기억의 양상이다. 집에 혼자 있었을 나이는 절대 아니었지만, 누구도 기억에 없다. 장소도 새하얗기만 하다. 단지 '떨쳐내고 벗어나고 싶은 대상이 생겨도 이렇게나 대책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막막함. 시야 속에 있었을 그 어떤 것-정확히 짚고 넘어가면 그 어떤 '내가 아닌 것'-도 뇌리에 남지 못했다. 다만 그 무기력한 감상 덩어리만이-한 번 더 정확히 짚고 넘어가면 그 무기력한 감상 덩어리를 짊어진 ''만이- 기억에 떠오르는 전부다.





 내가 아닌 것들은 달라진다 한들 시간이 흘러도 통증에 반응하는 의 방식은 여전한 것 같다. X-RAY며, 초음파며, MRI며, 다양한 진단 기법을 교묘하게 피해다니며 몇 년째 쉽게 사라지지 않는 신경통 혹은 근육통이 간헐적으로 오른쪽 어깨를 휘어감을 때도. 누구나 숱하게 앓는 계절 감기 하나에도 개복치처럼 유난을 떠는 호흡기 탓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잠들지 못할 때도. 치통이 잇몸과 지갑 속을 동시에 콕콕 찌를 때도.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가장 많이 되뇌이는 말은 "다 필요없고"다. 아플 때면 내가 아닌 것들로 통하는 모든 채널이 순식간에 닫혀버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러니 나중에 병들고 아파서 예민함을 어쩌지 못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쯤에는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 완고한 절차를 거쳐 마침내 를 잠재울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거슬러 올라가게 될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다 점차 희미해지는, 분명 ''와 '내가 아닌 것'들이었는데 서서히 뒤섞여 분간되지 않는,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참 친숙했다 느끼는, 눈을 감아 등지고자 하는 세상이 도통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을. 에 매몰되는 순간마다 불행했으니 내가 아닌 것들 틈으로 다시금 흩어지는 찰나에는 짧게나마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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