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담긴 마음 기록하기
최근 몇 달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두 번씩 도서관에 방문하면 직원께서 눈으로 알은척을 해주시니까. 그리고 아직 뵙진 못했지만 상호대차 서비스로 매주 내 이름으로 신청된 책들을 옮겨주시는 직원께서도 우리 동네를 자주 방문하고 계실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작은 곳이라 정말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오지 않을 동네니까 한 번쯤 ’이 사람은 누굴까‘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상상해 본다.
나는 책 편식이 심해 책을 골라 읽는다. 그래서 나의 독서 순서는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정해져 있다. 고전소설을 한참 읽다가 인권, 노동, 채식 등 삶에 관련된 책으로 넘어와 모난 현실을 힘들게 받아들이고 과부하에 걸리면 현대소설로 넘어가는 순서. 지금은 현실을 구석구석 밀어 넣다 더 이상 담을 공간이 없어 현대소설을 펼쳤는데 아무 고민 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독서가 달다.
나는 단편보다 장편을 좋아한다. 평소 몇 개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드라마에 집중이 흐려져 끝을 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소설은 내 마음대로 장면을 상상해 오래 몰입할 수 있어 긴 호흡의 장편을 좋아한다. 얼마 전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가 추천해 준 책으로 마음이 조금 달라졌지만.
몇 개의 단편으로 묶인 소설 ‘모르는 여인들’은 발행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 도서관에 딱 한 권 있던 책이라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책의 처음인 신발을 매개로 한 ’세상 끝의 신발’을 읽고 담담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문체에 반해 작가님을 찾는다. ‘외딴방을 쓰셨구나’ 길게 늘어진 작품활동 목록을 보고 이마를 탁 쳐버렸다.
총 7편의 단편은 허구의 얇은 가림막을 내세워 더욱 우리 삶의 사실을 드러낸 글로 전부 여운이 남는다. 인적 없는 숲에서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이 도움 요청 실패 후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자신과 분리되기 전까지 했던 말과 행동을 되새기는 ‘그가 지금 풀숲에서’,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보다 더 의지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메모 형식의 편지로 나타낸 ‘모르는 여인들’이 특히 그렇다.
두 이야기는 결혼으로 묶인 가족 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원래 있던 자리 혹은 잘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기대는 모습으로 흐른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면이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오직 공간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공간은 참 묘하다. 결혼만이 아니라 원가족, 룸메이트도 마찬가지로 같은 공간에서 생기는 미세한 경직이 크게 굳어지면 비스듬히 타인 혹은 혼자를 찾는다. 내가 고민하는 우리의 고민을 타인에게 내어 놓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까지 돌아가는 듯 하지만 시작하는 문턱이 낮아서일까 어쩐지 말이 막힘없이 나온다. 관계의 정도, 다양한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경직되지 않게 하는 것은 서로가 부단히 애써야 가능하다는 걸 되새긴다.
이렇게 성찰할 수 있는 글을 붙잡고 있으니 다시 한번 10년도 훨씬 넘은 책이라는 게 놀랍다.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색이 바랜 책은 관계 백과사전처럼 조금 든든한 마음까지 든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불편할 것 없이 오히려 지금도 고민하는 상황들로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더 많아지고 잘 보관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없어져야 할 문제는 기록으로만 남길 바라지만.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마주해 독후감을 남긴다. 내가 쓰는 것은 책의 일부를 보여주는 작은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언젠가 비슷한 독후감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다른 책을 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