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생각한 무엇에게
불쑥. 정말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 온다면 나는 반가운가. 누군가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니 누구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불쑥 안녕을 묻는 나의 연락이 상대방은 반가울까. 그것은 알 수 없으니 반가움, 호기심, 바람이 뒤섞인 연락은 때때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평소 연락이 뜸해도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많아질 때가 연말연초, 명절, 생일이 아닐까. ‘그래도 이런 날에는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숙제처럼 마지못해 남기는 연락은 사실 피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럴 때 한 번씩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복사+붙이기 식의 내용은 마치 숙제를 떠넘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달력에서 말하는 특별한 날보다 검은색으로 적혀 있는 날에 오는 연락을 좋아한다. 긴긴 인사말을 생략하고 날씨보다 계절을 묻거나, 더듬더듬 기억해 낸 지난밤 괴상한 꿈을 건네거나, 엊그제 자른 손톱이 그새 얼마쯤 자랐다는 사소하게 귀찮은 일들을 주고받는 연락. 당신의 일상을 묻고 답하는 진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연락을 말이다.
특정한 날에 오는 연락에서 우리는 어쩌면 사회에서 나를 소개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의 안녕이 궁금한지 의심이 드는 연락이 또 어쩌면 그의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 밥 먹자’ 같이 지나가는 인사에는 나도 지나가는 말로 답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지 못해 정성스럽게 의미 없는 말을 내보낸다.
다시 불쑥. 나는 지금 물음표를 지운 연락을 한다. 물음표를 지우고 나니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 생긴다. 노랑과 주황이 섞인 등을 곁에 두고 머리맡 너머로 들리는 강한 바람 소리에 기대어 그 진심을 전한다. ‘지금은 밤 2시야. 무드등을 켜고 바깥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 산속 깊이 있는 어느 산장에 있는 것 같아. 사건을 마주하기 딱 좋은 배경이지‘ 이렇게 가끔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매서운 바람이 부풀수록 안녕이 궁금한 무엇이 많아진다. 계절이 바뀌기 전 물음표를 버린 인사를 서둘러 건네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밤이다. 검은색이 더 많은 달력을 이런 밤으로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