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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Jan 20. 2023

속삭이는 변기

뒷골이 서늘해지는 허구 이야기

 자정을 넘은 깊은 밤, 강원도에 있는 한 아파트의 변기가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천천히 부엌에 닿은 그는 주변 서랍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귀가 밝은 동물과 사람이 있는지라 손과 눈을 바쁘게 움직이며 틈틈이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한다. 온몸에 긴장감을 안고 움직이길 한참, 드디어 발견한 것에 기쁜 나머지 변기 레버를 내릴 뻔했다. 그것은 바로 김 씨의 유산균.


 변비가 없는 김 씨가 하루에 몇 번이고 자신을 찾을 때면 힘들다는 생각도 못할 만큼 진이 빠질 때가 있다. 늘 사람들의 여러 고통을 받아주는 변기가 도를 지나치는 날을 마주할 때, 차라리 자신과 이어져 있는 파이프가 체하기를 바란다. 그러다 사람들이 주는 고통을 다른 고통으로 막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한 그는 그들이 자신을 덜 찾게 만들자고 생각을 바꾼다. 그것이 지금 변기가 움직이는 이유다.


 그는 서둘러 김 씨가 매일 먹는 유산균을 챙겨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편해 보이는 그들을 보자 자신의 참혹했던 지난 노동이 떠올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터져 나온다. 누가 말릴 틈 없이 그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간다. 매일 자신을 내려다보던 김 씨를 내려보는 이 순간이 짜릿한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김 씨의 귓가에 속삭인다.


 “끄응... 끄응......”


 여러 번 반복하지만 평소 깊이 잠들지 못하는 김 씨는 무슨 일인지 그날따라 꿈쩍하지 않는다. 변비가 주는 고통의 소리로 잠든 김 씨를 불편하게 해주려 했던 그는 생각대로 되지 않자 허무해져 들키지 않게 발에 힘을 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날 오랜만에 가뿐한 몸으로 일어난 김 씨는 기분이 좋아 그의 가족인 흰둥이 몸에 얼굴을 비비는 다소 과격한 아침 인사를 나눈 뒤 고소한 커피를 내린다. 한국인이라면 얼죽아, 그도 역시 지독한 한국인인지라 겨울의 지역 철원에 살아도 바뀌지 않는 그의 커피 취향이다. 얼음이 가득한 컵을 입으로 가져가 크게 한 모금 넣은 그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컵을 큰 소리가 날만큼 탁자에 내려치자 옆에 있던 흰둥이가 놀라 눈과 귀가 활짝 열린 채로 김 씨가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렇다.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쓰는 방법으로 빈속에 커피 마시기가 있다. 김 씨는 화장실을 가는데 급할 것은 없었지만 잘 자고 기분 좋은 마음에 마신 커피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시원하게 일을 해결해 두배로 기분이 좋아진 김 씨는 자신 때문에 놀란 흰둥이에게 달려가 전보다 더 과격하게 얼굴을 몸에 비빈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마시는데 남아 있는 복통의 여운으로 오늘을 가늠한다. “오늘 화장실에 많이 가겠네.“


 저 멀리 고독하게 앉아 있는 변기는 나지막이 들리는 김 씨의 말을 듣고 유산균만으로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밤 그가 김 씨를 조롱하듯 내뱉은 말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 상황이 그를 슬프게 만든다. 힘을 내는 것인지, 흐느끼는 것인지 모를 희미한 소리는 분명 어제와 다르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 잠깐 찾는 화장실에서 사람이 없어도 계속되는 소리가 제법 무섭다.


 “끄응...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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