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흙력(力)
드디어 공동체 텃밭을 시작했다. 무려 토종씨앗으로 하는 공동경작에는 퍼머컬쳐(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으로 진행된다. 멀칭에는 비닐 대신 짚과 종이박스, 화학비료 대신 음식물 퇴비, 석유로 움직이는 농기계 대신 삽과 호미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건강한 땅에서 토종씨앗을 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국에서 모인 귀한 토종씨앗인 만큼 직파하지 않고 모종을 내어 심기로 했다. 약 3주 전 미리 심은 씨앗은 5월임에도 뜨거운 햇빛 아래 힘들게 싹을 내더니 며칠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고 선명한 초록색 이파리를 내보였다. 검은흙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잎을 보고 있으면 뭔지 모를 힘이 생긴다.
모종을 옮겨심기 위해 공동경작 동료들과 밭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선생님이라 불릴 만큼 농사 경험 많은 동료들이 있어 초보 농사꾼은 듣고 실행하기 바쁘다. 땅을 나누고 두둑을 만들기 위해 뜨는 첫 삽,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그저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어쩐지 뿌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쳐지는 체력으로 느려지는 삽질에 떠지는 흙은 적지만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두둑을 만들었다.
오이, 땅콩, 콩, 참외, 수세미, 옥수수, 배추 등 갖가지 모종을 땅에 옮겨 심는다. 가을께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잘 자라달라는 부탁과 함께 흙을 꾹꾹 누른다. 밭에 여러 색이 채워지길 바라며 밭 주변으로 해바라기 씨를 잔뜩 뿌리기도, 장미와 허브도 중간중간 심는다. 열 명의 인원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진 텃밭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적절한 시기이다.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을 본 동료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주는 물은 겉면만 적시는 것뿐이고 빗물은 흙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요."
이틀 째 굵은 비가 내린다. 연휴에 내리는 비가 예전에는 불편했겠지만 동료 말을 듣고 나니 반갑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땅 깊은 곳까지 내려가길, 이제 잎을 낸 토종씨앗이 목마를 틈 없이 비가 내리길, 뜨거운 햇빛에 타들어 간 잎들이 조금씩 살아나길, 생기 있는 밭을 곁에 두고 메마른 나도 조금씩 채워지길.
흙 위에서 땀을 뚝뚝 흘리는 내가 토종씨앗을 위해서인지, 나를 위해서인지 모를 만큼 열심이다. 오랜만에 흘린 땀이 멍했던 정신을 선명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이든 식물이든 흙 위에서 힘을 얻는 것은 진리인 듯하다.
이제 더울 날만 남았다. 초보 농사꾼은 모든 것이 힘들겠지만 쌓여가는 경험에 걱정보다 설렘이 더 크다.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았는데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라니, 든든한 체력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처음으로 해보는 간절한 생각. 이 땅의 모든 농사꾼 바람이겠지만 올해 날씨가 우리에게 너무 혹독하지 않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