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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라는 정체 모를 단어와 마찬가지로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단어로서의 역활보다는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맛 하나로 기억을 더듬어 사람을 기억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기도 한다. 밋밋했던 나날이나 그날의 피로감을 달래주기도 하며, 소소한 행복을 받기도 하며,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맛있다’라고, 표현되는 곳이 어디든 우리는 그 맛을 찾아다니며 또 다른 맛을 찾아다닌다. 먹고 마시는 행위를 벗어나 맛이 주는 다양한 감정은 단순히 미각에서 표현하는 맛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신맛, 단맛, 쓴맛, 짠맛, 감칠맛
단순히 미각에서 표현되는 맛들은 이렇게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맛은 이보다 더 풍성함에도 사전에 나열된 의미는 제한적이고 명확하다. 커피에서 느껴졌던 오렌지 맛이나, 딸기 맛, 캬라멜 맛, 초콜릿 맛 등은 맛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짜장면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며, 피자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먹고 마시던 모든 것들에 대한 맛은 그 맛이 아니였던 것이다. 내 입안에서 느껴지던 감각이라 맛이라 표현하지만, 이는 모두 향이라 할 수 있다. 감기나 비염, 또는 코가 꽝꽝 막혀있던 날 마셨던 커피 한잔을 기억해 보자. 레몬이나 살구 등 과일에서나 느껴질 듯한 향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들큼한 커피 한잔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유혹했던 상큼한 과일도 오늘은 별생각 없이 지나가 버린다.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라면도 평소와 달라 젓가락을 놓고 싶지만 배고픔은 어쩔 수 없다. 향을 담당하는 후각의 상실로 우리는 그동안 즐겨왔던 맛을 상실해 버린다. 이럴 때 우리는 ‘맛이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맛이 없는 게 아니라 ‘향이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브라질 커피가 좋다던 친구가 브라질 특유의 고유 향 - 예를 들어 구운 아몬드나 호두, 땅콩, 토스트 등 - 에서 표현되는 복합적인 향들을 알지 못했다면, 그저 의미 없는 한잔이 되어 버린다. 오랜 숲속에서 잘 숙성된 발효 향과, 습하디습한 흙 향, 농도 깊은 구운 흑설탕의 매력적인 단맛은 강하게 로스팅된 인도네시아 만델링에서 느껴 볼 수 있는 별미지만, 이 또한 향을 잃어버린다면, 굳이 로스팅하는 정도를 구분하진 않을 것이다. 퇴근길 지하철 한켠에서 번지는 만주 특유의 냄새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그 맛을 기억하기보다는 그 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고, 어릴 적 내 어머니의 밥 내음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우리 머리속 깊은 곳에 진하게 남은 향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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떫은맛이나 매운맛은 위 다섯 가지 맛에 포함되지 않는다. 떫은맛은 혀의 세포들이 쪼그라들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건조하고 텁텁한 느낌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덜 익은 감이나 과일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이 약간의 불쾌감을 주지만, 와인에서 탄닌(Tannin; 탄닌 또는 태닌으로 불림)은 다른 음료들과 달리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 탄닌에 의한 떫은맛은 포도 껍질이나 씨에서 만들어 지기게 우리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와인 제조 시 이 탄닌의 양이나 느낌 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그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매운맛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혀나 볼 안쪽이 쓰라리거나 화끈거리는 등 대부분 아파서 생기는 현상이다. 괜스레 매운 음식이 당기는 날 빨간 고추가 여러 개 그려져 있던 매운 불닭을 먹고 나서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듯 내 입안을 바늘로 들쑤시고 다니는 느낌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불난 곳에 물이라도 들이켜 보지만 진짜 불이 난 게 아니라 큰 의미는 없다. 겨우 목구멍 아래로 내려보낸 매운맛은 이내 배 속을 쓰리게 만들어 입안에서의 고통이 그대로 이어진다. 매운맛을 즐겨하지 않는 나로서는 당황스럽고 큰 고통이다. 이는 손가락을 내 팔을 꼬집는 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