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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도 순서가 있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우리 내 시간처럼 맛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1분 1초가 단락으로 끊이지 않고 무한한 소수로 연결돼 흘러가듯, 맛 또한 같다. 특히나 커피는 신맛, 단맛, 쓴맛이 전부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커피를 좋아하는 이라면 - 또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도 - 비교적 쉽게 이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부터 다 마시고 난 후까지 변해가는 맛의 흐름은 맛있고, 맛없음을 판단하기도 하며, 자극의 정도를 판단하기도 한다.
신맛, 단맛, 쓴맛.
순서 그대로 다. 첫 모금에서 느껴지는 맛은 신맛이다. 신맛의 끝자락에 단맛이 따라오고 그 뒤로 쓴맛이 남는다. 쓴맛이 맨 뒤에 남아서 그런지 애프터 테이스트(After Tasste)라 불리는 후미의 여운과 자주 헷갈리곤 한다. 쓴맛은 커피를 마시는 중 맨 뒤에서 느껴지는 맛이며, 애프터 테이스트라 불리는 여운은 다 마시고 난 후 기도를 타고 올라오는 향이다. 단순히 입안에서 느껴지기에 맛이라 표현할 뿐 혀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닌 후각에서 느껴지는 향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맛이라 생각했던 향들로 인해 맛을 보는 감각에 오해가 생긴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향을 배제한 맛들의 흐름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감각이다. 익숙하지 않다 하더라도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을 떠올리면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상큼한 향으로 내 후각을 유혹하는 과일들 안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고 먹어봤을 레몬과 오렌지, 자몽을 기억 속에서 꺼내보면 이해가 쉽다. 글 몇 자로 적힌 단어만 읽었을 뿐인데도 내 안의 감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먼저 반응한다. 쓰거나 단 맛보다는 신맛으로 꽉 채워진 레몬 한 입 깨물자마자 그 특유의 향과 함께 폭발하듯 입안의 감각들을 괴롭힌다. 그 신맛이 어찌나 강한지 눈살이 찌푸려지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뒤끝은 없다. 반면에 자몽은 적당한 산미 뒤로 자몽 특유의 쓴맛이 배어 레몬과 다른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이 두 과일 사이에서 단맛을 가장 잘 표현하는 건 오렌지다. 부담스럽지 않은 신맛 뒤로 달달하게 입안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자몽과 같이 뒤에 따라오는 맛 없이 은은하게 끝이난다. 레몬의 신맛은 앞에서, 오렌지의 단맛은 중간에서, 자몽의 씁쓸함은 뒤에서 끝난다. 과도한 신맛과 쓴맛은 호불호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다른 말로 그 맛에 대한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반면, 단맛은 호불호 없이 대다수가 좋아하는 맛이다. 이 세 가지 맛 중 가장 중요한 맛은 당연히 단맛이다. 커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커피가 한낱 씨앗에서 생겨난 거라 뭔가 다를 거 같지만,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유히 흘러가는 맛의 흐름은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를 판단하기도 하지만, 맛을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렴풋이 그려지는 무형의 이미지인 ‘맛’을 ‘잡는다’라는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향미 그대로 추출이 되면 ‘맛을 잡았다’라고 표현한다. 저마다 기호가 달라 맛을 잡는 기준이 다르지만 대부분 추출된 커피 한잔을 두고 추출 상태나 분쇄 정도 그리고 로스팅이 정도를 판단하고, 수정한다. 가공된 원두 낱알 하나로 그 안에 응축돼 있는 향이나 맛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찻잎을 우려내듯 커피도 우려내야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매력들이, 또는 좋지 않은 향미들도 번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