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좁아질 때가 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마음의 문이 좁아져서 내 마음을 꺼내기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기도 힘들어지는 시기가 온다. 나는 가끔 타인이 버거워진다. 부대끼는 감정들 사이에서 ‘쟤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예민함이 올라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가야한다. 좋은 사람들과 다같이 떠나는 여행도 물론 즐겁지만, 삐뚤어진 나를 내가 챙겨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은 좁아진 마음의 문을 여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회사에서 긴 휴가를 받고 몇 개의 연차를 더 사용해서 10일 정도의 휴가를 만들었을 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정했다. 주변에서 혼자가면 무슨 재미냐, 무서운 일 당한다, 10일은 길다 같은 저마다의 오지랖을 남기고 나는 떠났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면 무섭다. 나는 그때 부산을 혼자 갔었는데,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모르는 동네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이 골목 끝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내가 묵을 숙소에 나쁜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하등 쓸모 없는 망상에 시달렸다. 어둑한 밤 혼자 꼼장어와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아무도 없는 어시장에서 길을 잃고 헤맸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날 뻔도 했다.
무서운 것도 잠시 신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게스트하우스가 수리 중이라 호텔 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준다고 했을 때부터 이번 여행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국밥집에 들어가 먹방 유튜버처럼 그릇을 비워내고 있을 때 혼자 온 내가 신경 쓰였던 여사장님은 국밥이랑 같이 먹으라며 수육 한 접시를 내어 주시기도 했다. 오륙도에 도착했을 때는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내 우산이 뒤집어지면서 내가 비를 쫄딱 맞게 되었을 때 꺄르르 웃는 나를 보며 같이 쓰자고 이모 관광객들이 달려들었다. 삶의 짐들을 내려놓고 돌아다니니 수많은 호의를 만나고, 좁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부산 원심지에는 포장마차 거리가 있는데, 수십개의 포장마차들을 지나가면서 스캔을 하고 가장 인심 좋아 보이는 이모가 한가하게 있는 포장마차에 쭈뼛쭈뼛 혼자 왔어요 하며 앉으니 저렴한 가격에 이모카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사장님이 안주를 계속 내어주는 포장마차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단골로 보이는 사투리 걸쭉한 아저씨가 와서 LA갈비를 시키셨다. 나를 한 번 스캔하더니 LA갈비를 좀 먹겠냐고 해서 그러면 제가 시킨 해삼도 좀 드시라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호탕한 아저씨는 술잔을 비우면서 당구장 내기에서 진 이야기, 요즘 벌이가 없어 마누라한테 혼났다는 이야기, 자식이 서울에서 신입사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술술 해 주신다.
그럼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만나지도 못할 이모와 아저씨에게 엄마와 싸운 일, 돈 벌기 힘들다는 군소리, 이렇게 일만 하다 죽으면 어떡하냐는 푸념들을 늘어놓으면 세상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다가 불같이 혼을 내시다가 잘 살고 있다고 격려해 주신다. 그럼 그게 또 사람 냄새나는 안주가 돼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한밤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고꾸라져 잠을 자면 다음날 카메라에는 포장마차에서 찍은 사장님과 호탕한 아저씨와 도무지 기억 안나는 청춘들과 찍은 수십장의 사진이 남겨 있다. 그럼 가끔 다른 포장마차에 가면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산에 가서 만난 호탕한 아저씨 얘기를 해주고 술을 마신다. (이름도 모르는 그 아저씨가 늘 건강하기를 빈다. 취기에 계산을 다 했다고 착각했지만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아저씨가 내 몫까지 계산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여행의 묘미는 내 일상의 타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떠나온 여행지에서 부지불식간에 내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넘어오는 타인들이다.
부산에서 지내는 3일이 마치 내가 여기가 고향인 것 같기도 한 착각에 빠지며 제주도로 넘어가기를 아쉬워했다. 그래도 혼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제주도에 넘어갔을 때는 또다른 공포체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초보운전&장롱면허인 내가 혼자 운전대를 붙잡고 운전을 한 것이다. 제주도민도 기피한다는 한라산 정가운데를 넘어 나는 서귀포로 갔다. 도로 먼 끝에서 바다가 보이며 햇살이 눈부시게 내릴 때 드디어 지옥인지 천국일지 모를 죽음에 도착했다고 착각했다. 서귀포에 도착했을 때는 감동 그 자체였고, 아무 사고 없이 끝까지 운전해서 온 내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나도 미쳐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부산, 제주도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내가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평소에는 내가 손이 많이 가는 사람들을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혼자 있어보니 나는 손이 많이 갔다. 하지만 혼자 간 여행에서 그걸 챙겨줄 사람은 오롯이 나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꼭 손에 묻혔고, 발권한 표를 가방에서 한참 찾았다. 안내표를 잘 보다가 다른 길로 세서 길을 헤매고 근처까지는 와봤네 하고 돌아가는 일도 많았다.
혼자서 잘 때는 잠자리를 가린다는 것도 알았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자는 편인데, 게스트하우스, 호텔, 에어비앤비 어디에서도 적응을 잘 못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애착 베개, 안대, 귀마개를 꼭 챙긴다. 그래도 잠이 안 올 때가 있으면 자는 것을 쿨하게 포기하고 긴긴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그 시간이 참 귀해서 잠을 못 드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러다 새벽에 문득 나와 함께 밤을 보내준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마워하다가 그리워하다가 다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힘을 얻는다.
혼자가면 외로울 것 같다고 묻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음이 좁아지고 심기가 예민할 때는 혼자 멍하니 바다를 보거나, 산책길을 걸으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혼자서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다 보면 엉클어진 수많은 관계에서 자유로워진 기분이 든다. 오로지 내 의견이 제일 중요하게 된다. 그렇게 혼자 떠나오면 마음의 문 틈이 서서히 벌어진다. 그럼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서 외로워진다. 다시 일상으로, 수많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삶의 다양한 관계가 부대끼는 이들에게 혼자 여행을 추천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들이 늘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변할 수도, 내가 삐뚤어질 수도 있다. 혼자 여행을 떠나 그 관계에서 벗어나면 놀랍게도 새로운 시각이 생기고, 미쳐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혼자만 알고 있는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면 나는 다시 바른 자세로 나의 따뜻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