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접게 된 것은 직장 동료 중 한 명 덕이었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SNS에 관련 사진을 올렸다. 다음 날 점심식사 시간에 직원들과 어제는 뭐했는지 스몰 토크를 하고 있던 중 ‘아 저는 어제 대학 후배들이랑 저녁을 먹었어요.’라고 말하려는 찰나 회사 동료 한 명이 내 말을 짜르고 ‘얘는 어제 대학 후배들이랑 저녁 먹었어. 맞지?’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네. 맞아요.’하고 짧게 대답하고 넘어갔다. 그 회사 동료는 집요하게도 나에게 오는 모든 질문을 다 자기가 대답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재밌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속초로 여행을 갈 것인데 어디가 재밌는지, 애막골에 새로 생긴 술집은 어디가 좋은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민지가 SNS에 올린 뭐가 좋더라.’라며 내 대답을 잘랐다. 이 상황을 몇차례 겪고 나서 더는 피드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그러다 타인이 내 말을 자른다는 이유로 SNS를 그만두기에는 뭔가 재미를 놓치는 것 같아 그 동료가 하지 않는 SNS로 넘어가서 다시 활발하게 사진을 올렸다. 그게 ‘인스타그램’이었다.
내 피드는 하루의 일기 같은 것이어서 대충 찍은 사진과 설명, 감상 등을 소소하게 적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스타 갬성’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인스타그램에, 인스타그램에 대한, 인스타그램을 위한 여행, 맛집, 카페 등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대충 트레이닝복을 입고 동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움이고, 어르신들 가득한 막국수집에서 막국수 한 그릇 뚝딱 하는 것이 행복이었는데 별 관심도 없던 ‘아인슈페너’를 마시러 가고, ‘곱도리탕’이나 ‘마카롱’ 사진을 수없이 찍고 나서야 한 입 먹을 수 있었다.
이 이상한 ‘인스타 갬성’의 절정을 경험한 것이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과 피크닉이 결합된 행사였는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들이 옷의 컬러를 통일해야 단체 사진이 이쁘다는 둥 꽃장식이 달린 머리띠를 하자는 둥 출발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었다. 나는 카더가든이랑 자이언티 공연을 보고 싶어서 그 곳에 가고자 했다. 그래도 친구들이 원하는 일이기에 긴 상의 끝에 노란색 상의와 청바지로 의견을 맞추고 우리는 서울로 갔다. 벚꽃 장식으로 가득한 행사장에서 나는 그날 10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고, 찍혔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 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더 웃긴 것은 1000장의 사진들을 추리고 추려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것 같은 사진들을 SNS에 업데이트 했다는 것이다. 내가 배추라면 ‘인스타 갬성’에 거의 다 절여진 상태인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명품백을 들고 찍은 사진 한 장에 시선이 사로잡혀 부러워했다. 건너 아는 사람의 팔로우수가 몇 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비결이 궁금해지고, 그 몇 만명을 가진 기분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끄고 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신상 카페나 오마카세 식당 방문기를 보고 막연하게 나도 가고 싶다 같은 의미 없는 갈망만 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자정이 넘어 있었다. 나의 하루는 내 이야기가 아닌 무성의한 갈망만이 가득했다.
‘나의 개성’에는 남다른 애정 같은 것이 있다. ‘나 답게 사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삶의 태도이기도 한데, 그 태도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함몰되고 있었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 잠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다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올려야 하는 내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나는 시간을 죽였고, 나를 죽였다.
그래서 SNS를 그만 접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현대 사회에 가장 중요한 사회 활동처럼 보였지만 사회생활에 어떠한 지장도 없었다. 멍한 상태로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보지 않으니 내가 지금 알아야하는 정보를 더 오래, 제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인스타 갬성’이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부단히 노력해도 되지 않으니 수고로움도 덜었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좋아요’, ‘팔로잉’수는 마치 나에 대한 세상의 애정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신경 쓰였던 숫자로부터 자유로워졌다. SNS를 버리니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아이폰이 체크해주는 SNS 어플 사용시간을 보니 족히 2~3시간이었다. SNS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 3시간을 벌 수 있다니 그동안 뭔 짓거리를 한건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내 취향과 기질, 시선, 감정과 다시 친해졌다. 이게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반려견과 산책을 나가도 반려견을 붙잡고 억지로 사진 찍지 않는다. 반려견은 세상의 모든 냄새에 집중하고, 나는 경이로운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꽃무늬 잠옷을 입고 쇼파에 뻗어서 책을 읽고 책에서 얻은 생각을 메모에 기록한다. 있어 보이는 책 보다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읽는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풍물시장에 가서 어딘가 하나 빠진 맛이 나는 선지해장국을 먹는다. 콩알만한 다육이가 엄지 손톱만해지면 호들갑을 떤다.
그래서 휴대폰 앨범에 잠자는 개 사진, 책 페이지들, 선지해장국, 꽈배기, 다육이, 소주잔, 해지는 저녁 하늘 같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제야 참 나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