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시골에서 옷을 사려면 읍내에 있는 작은 옷가게를 가거나 장날에 오는 좌판에서 옷을 고르는 일이 전부였다. 취향을 고려해서 옷을 산다는 것은 가능해도, 한정된 옷들 속에 우리 동네 어머니들의 취향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단체복을 맞춘 듯 ‘키티 같이 생긴 키티’가 그려진 티를 모두 입고 온 날에는 어딘지 모르게 다들 조금 부끄러워했다.
키가 좀 더 자랐을 때 내 또래들이 자주 입던 리바이스, 디키즈, MARU, NII, 뱅뱅, 퓨마 등의 다양한 브랜드를 입으려면 용돈을 모아 가까운 도시 춘천에 가거나 인터넷 액티브 엑스와 힘겹게 싸워 주문을 하고 은행에 가서 반드시 무통장 입금을 해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어야 멋쟁이가 될 수 있었다.
속초에 사는 고모가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인 나는 ‘아디다스 져지!!!!’라고 소리쳤다. 그 당시에 아디다스 져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방이 있는 옷이었고 그 옷만 입을 수 있다면 멋쟁이가 될 것만 같았다. 10만원이나 되는 비싼 트레이닝 자켓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쓰기에는 우리 엄마가 거둬야 할 식솔이 많았다. 그렇게 고모가 사온 아디다스 져지는 검정, 빨강, 파랑도 아닌 민트색이었다. 뭔가 특별한 색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구들이 입는 색깔이 아닌 어정쩡한 색깔의 그것을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이 색이 아니라고 떼를 썼다. 당시에는 내 태도의 잘못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니 노스페이스 패딩 붐이 일어났을 때 부모들의 허리가 휜다는 뉴스를 읽고 어딘지 모르게 무릎을 꿇고 반성하게 되었다.
가족의 품을 떠나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내가 가장 당황했던 것은 나의 ‘촌티’였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좋을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패션 센스라는 것은 교과 과정에 없었다. 어떤 청바지가 나와 잘 어울리는지, 애매한 봄과 여름 사이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수제화는 정말 발이 안 아픈지, 미팅에는 무엇을 입어야 하고, 피해야 할 옷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은 대학 OT에 좀 알려줘야 한다. 대학교 인근에서 2.8만원을 주고 열심히 볶은 보글보글한 파마 머리를 늘어뜨리고 와인색 스키니진, 두꺼운 회색 가디건을 입고 학교에 들어섰을 때 내 친구는 말했다. ‘안 덥니? 4월이다. 4월.’ 그때 부끄러워 발 끝을 보니 다 떨어진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촌티’를 벗는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이었다. 흰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도시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있고, 모든 유행하는 아이템을 얹어도 촌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있다. 서울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갖고 있는 모든 옷 중 제일 비싼 코트를 입고 서울에 갔다. 친구는 광장시장 구제 가게들이 즐비한 곳에 날 데리고 갔는데, 가지 말아야 했다.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삼촌이 양손 가득 들고 온 쿠키선물세트처럼 진열대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옷들은 하나하나 떼 탔고 멋스러웠다. 친구는 속삭였다. ‘눈탱이 맞기 쉬우니까 최대한 깎아야 해.’
그날 나의 아이가 된 게스 청자켓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가 늘 애용하는 자켓이 되었다. 동글동글한 내 몸에 착하고 감기더니 ‘저는 네 거입니다. 이 곳에서 너를 5년 기다렸어요.’하며 달라붙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빈티지. 수많은 사람의 몸과 손을 지나쳐 운명처럼 나를 만나 나에게 찰떡처럼 달라붙는 아이템. 나는 진심으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좋아하지만, 구제 시장을 돌고 돌아 수 백 개의 옷들과 소개팅을 했다. 어머, 집이 없구나. 우리 집으로 가자 하며 손을 잡고 나의 운명 같은 옷들을 데리고 왔다.
화려한 꽃무늬, 기이한 패턴, 유니크한 디자인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데, 멀리서 보면 촌스러워 보여도 내가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촌스러운 나를 촌스러운 것이 덮어주는 걸까? 아니면 나는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지만 기이하고 꽃 같은 사람일지도. 내 개성이 돋보이는 옷을 입으니 자신감이 솟구쳤다. 유행 아이템은 결국 유행일 뿐 내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몇 번의 광장시장과 동묘와 성수동, 홍대를 탐험하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취향과 컬렉션이 생겼다. 걸어 다니는 샤넬처럼 걸어 다니는 장민지 같은 것.
나만의 취향을 만드니 20대 초 나를 지독하게 쫓아다니던 촌티를 벗어난 느낌이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이 시기를 훌쩍 넘고 나서야 알게 된 진실은 아무도 타인의 모습(차림)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나에게 스스로 ‘촌티’라는 낙인을 새겼었다. 사계절 내내 변화하는 패션 유행을 따라잡겠다고 애쓰고, 자신감이 뚝 떨어져 어깨를 반 접고 다닌 어린 날의 내가 안쓰럽다.
내 취향을 만드는 일은 재미있다. 나를 잘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패턴, 디자인, 질감들을 자주 만나고, 만져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목록을 만들어가는 일.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일. (그게 가끔 타인에게 심미적으로 난해해 보이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어차피 그는 내가 뭘 입었는지 잊어 먹는다.) 흰 양말만 신었다면 빨간 양말에 도전해보고, 고무줄 바지만 입었다면 가죽 바지도 좀 입어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내가 나를 빚어가는 과정에서 나만의 것이 만들어진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것이 생기면 명품 하나 안 걸쳐도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