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공부 못했다고 우는 소리 내는 친구들은 늘 시험을 잘 본다. 인생 불변의 진리다. 왜 그들은 곧 죽을 것 같은 징징거림과 함께 아쉽게 하나를 틀렸다고 눈물을 흘릴까? 나는 시험 공부를 못했다고 웃으면서 말하고 정말 시험을 못 봤다. 학교를 벗어나면 이 진리가 돈으로 바뀐다. 돈 없다고 우는 소리 내는 사람들 중에 돈 없는 애 없다. 내가 돈이 없어 봐서 잘 안다. 통장에 돈이 0원이면 오히려 호탕한 소리가 난다. 나 정말 돈이 없어 크크크.
세 걸음 거리면 택시를 탔고, 삼시세끼를 배달음식으로 때웠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밤 새는 일도 많았다. 이미 집에는 PC방 사양에 컴퓨터가 있었다. 마트에 들어가면 양손 가득 무겁게 나와야 했고. 4캔을 사야 할인 받는 맥주는 꼭 4캔을 담아야 직성이 풀렸다. 이렇게 쓰는 돈이 다 ‘시발비용’이다. 계속 시발비용이라고 쓰기에는 우리 모두의 정서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스트레스로 인한 과소비 정도로 풀어 써보겠다.
원치 않는 야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그때 회사와 집은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였지만 짜증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체로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 회사에서 저녁으로 김밥을 먹었지만 왠지 헛헛한 마음에 보쌈을 하나 시킨다. 걸어서 5분이면 편의점이 나오지만 고생한 나는 오늘 더 이상 걸을 수 없다. (TMI: 나는 사무직이다.) 병당 3~4천원 하는 소주도 척척 배달시킨다. 야무지게 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점 먹고 나니 더 안 들어간다. 취기와 피곤이 몰려오면 대충 샤워를 하고 잔다. 내일은 늦게 일어나고 나는 또 택시를 부른다. 야근수당만큼 소비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사회초년생일 무렵 일상이었다.
과소비를 하면 상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의 자기 만족 같은 것을 느꼈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하루살이처럼 벌고 쓰면서 꽤 괜찮은 인생이라고 자부했다.
나는 스스로 풍류를 즐기는 낭만파라고 여겼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면에는 백마디도 더 거들 수 있었지만, 정작 내 몸이 아플 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더 나은 삶을 꾸리기 위해서 목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외면했다. 이 태도가 나에게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치과 진료비로 50만원이 나오고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어 찌질한 목소리로 엄마한테 빌려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야 정신이 (아주)조금 들었다. 직장인인 내가 당장 아파서 쓸 수 있는 현금 50만원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자취방에 에어컨이 없어 꽝꽝 얼린 페트병을 끌어안고 자면서 이상한 자괴감을 느꼈다. 한겨울에는 오죽했을까? 전기장판 하나에 겨울을 의지하고, 더 추우면 소주를 마셨다.
주변 사람들과 월세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들 전세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 속에 큰 바위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이 지원을 해줘서, 열심히 모은 목돈으로, 대출을 조금 받아서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난 후 나는 쇼크상태가 되었다. 뭐야? 다들 돈 없다고 했잖아요.
타인의 삶과 내 삶이 똑같을 수 없고, 타인의 재산이 많다고 내가 배 아플 필요가 없다. 이건 결이 좀 달랐다. 나는 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당장 아파도, 무더위와 한파가 찾아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재테크 관련 책을 읽고 가계부를 쓰고 돈을 모았다. 매일 밤 늦게까지 돈 공부를 하다 오랜만에 나간 술자리에서 코피를 쏟았을 때 희열과 동시에 든든한 뒷배가 생긴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페트병 얼리는 것을 깜빡했을 때의 공포감, 세탁기가 얼어 빨래를 할 수 없을 때의 긴장감, 돈이 없다고 호탕하게 말할 때의 자조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요즘이 되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겠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순 없지만, 돈이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방어막이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지금은 시발비용을 아예 안 쓰냐고 묻는다면 쉿! 나는 아직 로또에 당첨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