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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Oct 17. 2022

게임을 끊는 게임

아직 게임을 끊는 게임을 하는 중이다. 현실이 시궁창일 때는 게임 세계만큼 마음 편한 곳도 없다. 현실에서는 경험치가 미미하게 늘어도, 게임에서는 눈에 보이게 레벨업을 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꾸준히 배워온 10대를 거쳐 해외여행을 갔을 때 한마디의 영어 문장을 내뱉지 못해 좌절해도, 게임은 고된 노력 없이 쉽게 만렙을 달성할 수 있었다. 손에 바로 잡히는 너무나도 쉬운 성취감이 늘 짜릿하게 했다.


고등학교 때는 카트라이더에 빠져 친구들과 학교를 탈출해 PC방에서 8명이 단체전을 하고, 그 즐거움에 사로잡혀 교실 수업용 컴퓨터로 카트라이더를 하다 선생님께 걸려 다같이 오리걸음을 걸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8명이 카트라이더 맵 속 바다를 보고 속초로 가자고 뛰쳐나온 적도 있었다. 우리는 속초를 가려다 그대로 PC방에 갔다. 하루는 정도가 지나쳐 수업용 컴퓨터로 카트라이더를 하다가 모니터 화면이 불편해서(라떼는 모니터가 테이블 속에 있었다.) 수업용 TV까지 켜서 카트라이더를 하다 선생님께 걸렸다. 그때 카트라이더 멤버들 모두 교무실에 불러가 계정 삭제 각서를 쓰고 나서야 대학 입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 친구를 못 사귀고 방황했던 나는 우연히 시작한 총게임으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과 게임 말고 현실에서 싸우는데도 게임은 많은 기여를 했는데, 비껴 쏜 총알만큼 욕을 하기도, 먹기도 했다. 게임 길드에 가입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삼겹살 회식을 하고 다같이 피시방을 갔을 때는 시골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문화 생활을 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과선배들과 함께 단과 게임대회에 나가기 위해 만사를 제쳐 두고 연습에 매진했을 때는 태릉선수촌이 이런 분위기일까 상상하기도 했다.


2008년에 PC방은 대부흥의 시기였기에 가격 경쟁에 따라 1시간에 500원 하는 곳도 있었다. 수업을 대충 마치면 PC방에 우르르 몰려가 게임도 하고, 식사도 했다. 그 빈도가 점점 늘면서 수업을 제끼고 PC방으로 가거나, PC방에서 밤을 꼬박 새고 나와 저녁까지 늘어지게 잤다. 그리고 다시 PC방에 가서 짜파게티 한 그릇 먹고 게임을 했다. 가성비 최고의 취미를 얻고 학점과 생활을 잃었다.


운이 좋게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고 의젓한 사회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 입사한지 세 달도 되지 않아 직장 상사와 PC방에서 디아블로3를 했다. 새로 배운 업무는 모두 숙지하지 못했지만 빠르게 습득한 디아블로3로 상사의 캐릭터를 키웠을 때 나는 게임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게임을 잘해서 상사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20대를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작고 소중한 월급을 저축해서 최고 사양의 컴퓨터를 맞춘 후 나는 의젓한 게임폐인이 되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게임으로 날려보냈다. 그때 여동생들과 함께 손대지 말아야할 RPG게임에 빠진 후 게임, 술, 밤샘이라는 완벽한 삼박자를 만들었고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중독의 길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갔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조이스틱을 움직일 때의 짜릿함과 게임이 끝났을 때의 아쉬움은 사라졌다. 내가 산 컴퓨터로 매일 하는 게임이 늘 짜릿하지는 않았지만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할 수 있었고 새벽 1시가 넘어가면 본체를 끄고 조용해진 방에서 잘 준비를 했다. 불 꺼진 방에서 게임 영상을 돌려보며 내일 회사를 가야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렇게 새벽 2~3시에 겨우 잠이 들어 다음날 출근을 하면 다시 모니터 앞에서 빨개진 눈을 비비며 일을 했다.


게임폐인으로 살면서 이보다 더 폐인이 될 수는 없다고 자신했지만 운명같이 나는 이 게임을 만나게 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나는 이 게임을 만나고 폐인을 넘어 장인의 길로 가고 싶었다. 라떼는 게임이 백해무익한 담배와 같은 취급을 받았지만 슬슬 게임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 스포츠로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였다. 게임만 하는 사람을 폐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운동을 열심히 하는 스포츠인으로 봐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자기합리화에 빠졌다.


롤을 시작하고 나서 제일 처음 당황한 것은 ‘욕’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욕을 참 많이 하기도 했고, 먹기도 먹었지만 이렇게 도를 지나친 욕을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렸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우리 엄마 안부는 왜 이렇게 묻는건지. 이 게임은 게임의 실력보다 개인의 멘탈에 승패가 갈린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5명이 한 팀이 되어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그 중 한명이라도 게임을 방해한다면 이기기가 많이 힘들어진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엄마의 안부를 듣고, 채팅창에 똑같은 안부인사를 건네기에는 나름 교양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조용히 차단을 누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으로 중얼거리던 것이 입밖으로 나오고, 그게 버릇이 되어 온갖 쌍시옷을 달고 사는 몰상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게임을 배우고 나서 욕 말고 또 얻은 것이 있다면 짜증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내 캐릭터가 크는 것이 아니어서 아무리 곱절의 노력을 해도 내가 만족할 수준의 실력이 나오지 않으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보통의 RPG 게임은 내가 오늘 레벨 35를 찍었다면 내일 35부터 더 높은 레벨을 향해 달려가는데, 이 게임은 매 시즌마다 등급을 정하는 시험을 치렀다. 내 이번 시험 등급이 실버로 정해지고 골드를 향해 달려가도 내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이상 골드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근데 골드를 가지 못하는 내가 용납이 안됐다. 게임 인생 15년 동안 내가 갈고 닦은 게임 능력치가 있을 텐데, 이렇게 지독하게 나에게 독배를 주는 게임이 있었을까? 오기는 짜증으로 바뀌고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놓친 채 게임을 파기 시작했다.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짜증을 냈고 도대체 공부를 왜 안 하는지 따졌다. 더 이상 게임은 나에게 오락이 아니었다. 


게임을 하는 친구들과 연패를 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집에 가서 게임을 복기했다. 나는 도대체 왜 실력이 늘지 않는지, 내 손가락은 왜 말을 안 듣는건지 밑도 끝도 없이 자책을 했다. 롤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배운 것을 따라해보겠다고 다시 게임을 했다. 그렇게 다시 새벽 늦게 자고 출근을 하니 일도 사람도 반갑지가 않았다. 머리 속에 게임이 둥둥 떠다니고 빨리 퇴근해서 게임을 하고 싶었다. 어제는 연패를 했으니까 오늘은 연승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빠져 퇴근만 기다렸다. 그렇게 만성피로는 만렙피로가 되어 있었다.


게임 장인을 바라던 게임 폐인은 게임을 멈췄다. 같이 게임을 하던 사람 중 한 명이 ‘아 진짜 미안해 소리 좀 그만해’하고 짜증을 냈다. 무슨 말이지? 내가 언제 미안하다고 한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게임을 할 때 실수 하나하나에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웃음기 없이 주눅이 잔뜩 든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나서야 내가 지금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욕과 짜증이 듣기 싫어 잔뜩 곤두선 상태로, 내가 하는 실수로 우리 팀이 지게 될까 봐 초조한 상태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되뇌이고 있었다. 게임과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롤을 끊은 지는 3년이 넘어간다. 나는 아직도 게임을 끊는 게임을 하는 중인데, 착한 남동생이 닌텐도를 사줬다. (사실 뭐 갖고 싶은지 묻길래 닌텐도라고 했다. 참 나도 나다.) 큰 TV에 연결된 게임 화면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1. 오늘 꼭 해야 하는 나의 몫의 일거리를 모두 끝낸 후에 한다.

2. 승패가 없거나 승리의 큰 의미가 없는 게임을 한다.

3. 게임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웃음이 나지 않으면 바로 멈춘다.


이렇게 정하고 잘 지키고 있다. 잘 지키면서도 궁금하다. 나는 게임을 끊는 게임에서 진 것일까? 아니면 이기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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