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우선이고 싶다.

중년의 오락가락하는 마음

by seungmom

다시 아이들 곁으로 가려고 짐을 꾸리면서 문뜩 왜 가려고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답을 쥐어짜듯이 생각해 낸 것이 고작 먹을 것을 챙겨주려고...

헌데 딱히 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그저 내가 가면 야채와 과일을 먹이는 정도로

그걸하러 그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거기까지 가는 거냐고 할 것 같은데

비용은 적어도 3개월 이전에 사두었고 시간은 나에게 널리고 널린 것이라서...

이렇게 말하니 내가 나를 허접하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 나의 가치가 점점 줄어든다.

이러는 나도 몇 년 전에는 내 시간을 달라며 독립운동도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엄마인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예전 전성시대를 그리워한다.


나는 괘나 잘 나가는 엄마였었다.

아들에게는 자전거와 스케이트 보드에 도전하게 해 주었고

딸에게는 바느질과 뜨개질도 전수했다.

두 아이들의 피아노도 내가 가르쳤고 운전도 절약의 차원에서 내가 가르쳤다.

시험 기간이 되면 교과서에 줄을 쳐 놓은 부분을 자판으로 쳐 달라는 주문도 받았고

아이들이 하기 힘든 부분의 악보를 조금씩 고쳐서 편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이렇게 빛났던 엄마였는데...

언제나 무엇을 하든 의견을 묻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간다.

이젠 거기에 더해서 아이들은 내가 모르는 언어와 분야의 세상에서 살고 있어

나는 어려워 엄두도 못 내는 것들을 아이들은 나 없이도 해 내고 있다.


그러면서 엄마였던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내세울 것이 없어 그러는지

짐을 꾸리는 이유가 왜 나 자신이면 안 되는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도 아이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친구가 가장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라고 했을 때 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 좋은 시간들이어서 고를 수 없었던 것인지 하나도 건질만한 것이 없었던 것인지

그저 무덤덤하게 다시는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만 확인했다.


난 엄청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그 무엇 안에 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에 충실했고 그래서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키웠고

장녀로 아버지가 원했던 대로 동생들의 입장도 챙겨서 잘 마무리도 했는데

그 시간들 속에 나는 있었나 하는 것에서는 어물쩡 거려진다.


나는 어떻게 키워졌는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그 속에 난 전혀 존재가 없었다는 것에 눈을 뜨고 입으로 뱉어 내기 시작하려니

들어서 해결을 해 줘야 하는 사람들은 기력이 없어 듣기도 힘들어했다.

그렇게 난 어릴 적이라든지 젊은 시절에 대해 떠올리는 것이 즐겁지 않은데

엄마로서는 어떠했는지 생각을 해 보면 무지 충실하게 철저하게 맡은 일을 해 냈지만

그때도 나는 없었는지 나의 40대 기억은 없어도 아이들의 10대 기억은 가득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너무 버거워 빨리 커서 내 손길이 없어도 될 때가 왔으면 했는데

정작 아이들이 커서 나에게 엄마보다는 자신을 찾으라고 하는 말에 왠지 서운해진다.


나도 내가 무엇을 원했었는지 그런 게 있기는 했었는지 까마득한 이전이 기억에도 없는데

지금에 와서 장녀이고 엄마이기만 한 내가 싫다고 버둥거린다.

난 무엇에 밀려 그때도 나는 없었을까...

이렇게 쓰면서 이제라도 나를 찾아내자고 남은 시간이라도 나를 살려 보자고 애를 썼더니

그랬더니 정말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2018년 12월 23일 LAX 공항에서 입국 심사관이 여기에 왜 왔냐고 물었는데

난 처음으로 일본의 겨울이 너무 추워서 왔다고 했더니 씩 웃고는 여기가 따뜻하죠 했다.

이제까지는 아이들이 있어서 오게 되었다는 엄마의 입장으로 입국 심사를 했는데

이번엔 정말 나 자신만의 입장으로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는 것에 나도 놀랬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변해 가면 나에게도 딱 떠오르는 한순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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