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나이 든 증거인가 한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부터 떠날 준비를 했었다.
내가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질까 봐 그 전날에는
아들 물건을 가방 하나 꾸려서 아들의 아파트에 가져다 놓았다.
이사를 위해서 가져왔던 것은 딸에게 들려 LA로 보내야 했다.
올 때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지만 돌아갈 때엔 기내용 가방으로
딸아이의 물건이 가장 적으니까 그 가방에 넣어 보내야 한다고
혹시나 실수로 놓치지 않으려고 머리끝이 다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침 일찍 아들이 학교 연구실에 가서 뭔가를 해 놓고
다시 호텔로 와서 딸과 같이 아침으로 먹을 것을 사러 갔었다.
둘이 떠들면서 같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먹먹해졌는데
얼른 이런 감정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고 나를 현실로 불렀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호텔방을 정리해 두자고 서둘렀는데
짐을 덜자고 어제 일부러 아들의 아파트까지 다녀온 보람도 없이
내가 가지고 가야 하는 가방이 넘치더니 헝겊 가방 하나도 빵빵해져
이걸 혼자서 끌고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불안해졌다.
아이들이 사 온 베이글 샌드위치를 호텔 로비에 앉아 먹었는데
나는 그때 정말 정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딸은 셋이 같이 있다가 혼자 LA로 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 호텔에는 많은 추억이 있는데 다시는 올 일이 없겠구나 하는 미련에
딸에게도 호텔도 마음만 오락가락하다가 다 먹고 가방을 가지러 방에 갔다.
먼저 딸아이가 놔둔 것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다음에 아들이 했는데
자리만 차지하는 쿠션이나 전화기 등을 서랍에 넣어 두고 지냈었던 것을
모두 꺼내어 원상태로 돌려놓고 재활용과 쓰레기의 구분도 해 놨더니
딸이 이런 것까지 하냐고 한마디 하고 아들은 엄마의 성격이라고 했다.
언제나처럼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꼭 하고 말더라는 아들의 말대로
나는 내 이름이 지나간 흔적은 나처럼 만들어 놔야 한다고 우기면서
정신없이 치우고 가방을 채우면서 아이들의 표정에도 반응을 하면서
기억에 남도록 해야 한다고 사진도 찍으면서 방을 나왔다.
아들은 연구실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라고 먼저 떠나고
딸을 데리고 공항으로 갈 택시가 호텔 앞에 와 있다고 해서 나가는데
딸의 짐보다 내 짐이 더 많아서 딸은 그걸 다 들고 역까지 갈 수 있냐고 했다.
당연히 잘 들고 갈 수 있다고 장담을 하면서 딸에게 안심을 시켰는데
헤어지는 것은 정말 익숙해지기가 힘든지 딸이 탄 택시를 쳐다보다가
눈앞의 신호에 걸려서 멈춘 택시를 보고는 따라서 같이 걸었다면 하는
아쉬움에 지금이라도 뛰어갈까 하니 정말 가방이 너무나 무거웠다.
어떤 힘을 내도 택시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바라보면서 내가 나에게 중심을 잡으라고 이게 끝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가라앉는지 먹먹해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더는 택시가 보이지 않게 되자 호텔 앞에 여행가방을 든 머리 허연 여자가
멍하니 계속 서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정신이 드니 진이 빠져버렸다.
이 낯선 맨해튼에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혼란은 처음 아이들을 미국에 놔두고 혼자 떠날 때의 기분을 불러왔는데
그때도 나는 아이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없는 용기에 허세를 부렸었다.
그렇게 자립을 한 것 같은 내가 다시 아이들에게 매달리게 되었는지 겁이 나
움직이자고 기내용 가방을 끌고 헝겊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역으로 걸었다.
며칠 전부터 신경 써서 역까지 가는 길과 어떤 전철을 타야 하는지
내 방식대로 눈여겨서 봐 두고 혹시나 하면서 사진도 찍어 뒀는데
딸이 할 수 있겠어하면서 말을 꺼내면 나는 움칫하는 마음에 놀랬었다.
그랬던 내가 무거운 가방에 치이고 헤어지는 허전함에 속이 쓰려서
다른 생각이 들어 올 자리가 없었는지 주변에 대한 불안 없이 걸었는데
무사히 역까지 와 지하철에 앉으니 긴장한 얼굴의 내가 유리창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