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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의 편지들이 전하는 나

지나간 시간을 열어 봤다.

by seungmom

오래전 편지들을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보자고 묶어 뒀던 끈을 풀었다.


내가 일본으로 오면서 가지고 온 내 물건을 다시 내 나라로 가져가자고

상자 한가득 들어 있던 것들을 열어 보면서 정말 오랜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을 쓴 공책과 일기 같은 기록에 기념품과 사진들이 들어 있는 상자는

이 일본 생활에서 흐릿해져 사라지려는 나를 나로 매번 다시 찾아 주었는데

덕분에 나를 잃지 않고 버티면서 이겨내 보려는 용기를 가졌던 것 같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보면서 기분을 달랬는데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는 맷집이 생겨 더는 추억의 힘이 필요 없었는지

상자를 보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막연하게 힘들었던 시간만 떠올라서

의식적으로 열어 볼 생각을 피했는데 언제는 도움이 되었던 것들을

이제는 도리어 잊고 지내던 시간을 떠올린다고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이 이중적인 내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상자 속의 물건에 대해서

이대로 놔두면 아이들이 처분을 해야 하게 될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이건 엄마인 내가 말끔하게 정리를 하고 떠나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직은 살아 있으니 나의 젊은 시절의 시간들이 쓰여 있는

글이나 사진 등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부산에 가지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열어 본 상자 안에는 40년이 지난 오래된 편지들도 있었다.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 선배 후배에 일본에서 다녔던 학교의 동기도

동생들도 편지라는 것을 썼었구나 하면서 신기해서 날짜를 보니

1978년이었는데 2025년인 이 시간에서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1984년 친구가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로 시작했다.

후배도 선배도 모두 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바로 쓰려고 했었다며

보낸 선물이 어쩌고 하는 내용이 전부인 것이 많아서 이게 뭔지...


그 시절 한 친구가 나에게 옷을 사서 보낸 것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특히 겨울 모직 반 바지는 자기가 입어 보니 좋더라며 보낸 것인데

나도 맘에 들어 모직이 반질거릴 때까지 외출복으로 입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보낸 화사한 홈웨어라는 것은 너무 나풀거렸는데

매번 계절마다 잊지 않고 생일이라고 크리스마스라는 핑계로 보내서

이 친구는 내가 타국에서 외로울 거라고 마음이 쓰였구나 했었지만

그때 내가 선물을 소포로 보낸 기억이 전혀 없어서 항상 미안했었다.


그렇게 내가 보낸 기억은 없지만 받은 것에 대한 기억은 또렸한데

후들거리는 편지들을 모두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읽어 본 편지들은

첫 문장이 대부분 소포 잘 받았다며 마음에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내가 선물도 보냈었구나 부지런했었네 하는 마음이었지만

읽는 편지마다 첫 줄이 그래서 자존심이 상해 관두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가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다는

받고도 너무 늦게 답장을 쓴다는 말을 선배도 후배도 썼는데

그 당시에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내가 짜증이 났다.


꿋꿋하게 잘 이겨낸 일본살이라고 기억하면서 뿌듯해했었더니

그때의 나는 관심을 구걸했었는지 온통 그런 답장인 듯 보여서

참으로 불쌍했던 시절이었구나 하며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지에는 억지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에 고맙다고 했는데

그다음의 편지는 없으니 그것으로 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일본이란 나라에 살려니 마음이 온통 한국의 인연만 붙들고 있었는지

그 시간 동안은 내가 일본에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내가 변해 간다는 것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내가 달라졌다는 것에도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

지금이라면 이런 억지 인연을 끊어내지 못해서 안달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엔 이렇게 라도 해서 고국에서 다들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증표로

그걸 힘으로 삼고 버틴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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