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끔씨 May 15. 2021

잊지 못할 스페인 햇살

네덜란드 교환학생 실패기_02

스페인 여행기_1부


네덜란드는 추운 곳이다. 아니, 춥다고만 말하는 것은 너무 상냥한 표현이다.

조금 원색적으로 표현하자면 네덜란드의 날씨는 영국만큼이나 지랄(?)맞다. 일 년 내내 우중충하고 예고 없이 비가 오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네덜란드의 비를 처음 경험했을 때 놀랐던 점은 대다수가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비보다는 비바람에 가까운 네덜란드의 날씨 속에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은 방수처리가 된 옷을 입거나 후드를 뒤집어쓴다. 네덜란드의 여러 마트를 가면 방수 스프레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첫 달은 매우 추웠다. 2월 초에 학기가 시작했기 때문에, 금방 봄이 올 것이라 생각해서 겨울옷은 거의 챙기지 않았었다. 웬걸. 도착하자마자 첫 주말에 한 일은, 패딩을 산 것이었고 그 패딩을 5월까지 입고 다녔다. 

정말 추웠던 것은 날씨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던 나에게 도전이라는 과제는 쉽게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제껏 나는 무모한 행동파에 가까웠다. 즉흥적인 도전들을 좋아했고, 여행을 할 때도 큰 계획 없이 도착해서의 모든 희노애락이 여행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여행과 삶은 아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ㅣ출처 : Utrecht (Netherlands), Cycling in the Rain, 유튜브

(영상으로 보면 네덜란드인들이 비 속에서 유유히 자전거타는 실력을 볼 수 있다)




교환학생으로 첫 달에 해야 하는 일은 행정적인 처리들인데, 계좌를 개통하고, 교통권을 등록하고, 거주허가를 받고 하는 등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이 있고,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무엇보다 자국민이니까. 외국인이라는 말이 그전까지는 감성적인 언어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나라 바깥의 사람'이라는 차갑고 현실적인 언어로 다가왔다. 


네덜란드에서 행정적인 일을 보려면 인터넷을 통해 방문시간을 신청해야 한다.(무려 15분 단위로 배정되어 있다.) 무턱대고 간다고 해결되는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전과 역시 만만치 않는 과정이었는데,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교환학생을 위해 열리는 질의응답 부스를 일주일에 딱 한 번 운영했다. 당장 전과를 하려면 어느 과의 수업을 들어야하는지, 누구와 소통해야하는지 당장에 알 수 있는게 없었다. 수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다른 과의 수업을 들으라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일단 그렇게 하는 와중에도, 제대로 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참 불안했었다. 나의 요구가 급할수록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한국이었다면, 유럽에선 '너의 요구를 알겠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응답해 줄 시간이 아니야. 그러니 기다려.'라는 식이었다. 참 야속하면서도 당당한 그 태도가 한편으론 부럽기까지 했던 것 같다.(후에야 '건강한 서비스'를 위해서 이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부족한 정보와 소통 속에서 가까스로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해내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첫 중간 방학이 찾아왔다.


한 달의 생존을 마친 나는 어디든 떠나야 했고, 일단 그 추운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스페인행 비행기를 끊었다. 

스페인에 대해 소개할 것은 많지 않다. 스페인행 역시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목적이었다면 햇살을 맞는 것. 목적에 충실한 여행이었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준 햇살은 다시 한 번 스페인을 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햇살을 담아와 이 글에 뿌리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마음마다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인에서 우주쓰레기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