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캣 Oct 30. 2018

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

9. 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


내가 카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걸 증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작가이기 때문이다. 카뮈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반항이다. 인간은 다리를 건널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 니체의 표현처럼, 부조리한 세상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반항의 몸짓만큼은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이 유명한 첫 문장에서 말하는 자살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반항의 몸짓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삶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자살로 시작하는 이 작품이 끝내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 삶의 근원적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1913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열일곱 살 때 심한 폐렴을 겪으며 처음으로 죽음과 마주한다. 또한 이때 해친 건강으로 인해 군 입대를 거부당하고 교수 자격도 얻지 못한다. 부조리 3부작인 소설 ‘이방인’과 희곡 ‘칼리굴라’ 그리고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는 신문 기자였던 그가 20대 후반에 기획하고 집필한 작품들이다. 실제로 카뮈는 ‘이방인’을 마무리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시지프 신화’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이어서 읽으면 좋은 이유다. ‘시지프 신화’를 통해 뫼르소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부조리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선한 행동이 그에 걸맞지 않은 결과로 돌아올 때가 자주 있다. 반대로 악인들의 삶이 꼭 불행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지도 않다. 카뮈는 부조리의 원인이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바랬던 것과 그 결과물의 차이가 부조리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호소에 대해 세계가 비합리적으로 침묵할 때 그 대면에서 부조리한 감정이 생겨난다.


대표적인 예가 카프카의 ‘소송’일 것이다. 요제프 K는 어느 날 문득 고소당한다. 당사자는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겼으니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변호인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요제프 K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평소와 다름 없이 일하고, 밥 먹고, 사랑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단지 조금 불편하다고 느낄 뿐이다. 부록으로 포함된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속에 나타난 희망과 부조리’를 통해 카뮈는 태어날 때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우리의 삶을 인간 조건의 한 이미지라고 말한다.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삶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마치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의미 없는 기다림을 반복하는 하루가 쌓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카뮈는 해결책으로 부조리한 인간을 제시한다. 부조리한 인간이란 부조리한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인간을 말한다. 올지 안 올지, 온다고 해서 뭔가 해결될 지 장담할 수도 없는 고도 같은 걸 기다리며 살기 보다는,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카의 ‘소송’에 이어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하다. ‘소송’에서 문제를 제시하고 ‘성’은 어느 정도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카뮈는 말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과는 달리 ‘성’의 요제프 K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비록 그것이 유치한 방법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은 방향에서 진전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제목은 ‘시지프 신화’이다. 신화 속 시지프가 형벌을 받게 된 이유는 확실치 않다. 여러 설이 있지만, 시지프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고 올라가고, 그 바위가 정상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면 다시 밀고 올라가야 하는 행위를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벌을 받은 건 분명하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우리 일상을 발견했다. 매일 아침 눈을 떠 같은 하루를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인간의 삶.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지만, 그 내일이 오면 우리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올지 안 올지, 더 나아질지 혹은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막연하게 기다리기 보다는 오늘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언젠가 형벌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지 말고, 차라리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남들처럼 사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쉬운 선택일 것이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일하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 내 의지와 관계 없이 타인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것, 이것은 아마 노예생활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한 번뿐인 삶을 그런 식으로 흘려 보내는 것에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록 초라하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삶(매일 반복되어도 견딜 수 있는)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삶도 시지프의 일상과 같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아마 자발적 노예생활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던 부조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거라고, 카뮈는 그것을 반항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하늘에서 그리고 땅 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같은 방향으로 복종하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결과 마침내는 가령 덕, 예술, 음악, 무용, 이성, 정신과 같은, 이 땅에서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 모습을 바꾸어 놓는 그 무엇, 무엇인가 세련되고 광적인 혹은 신성한 그 무엇이 생겨난다.” 라고 썼는데, 그는 그 말로써 위대한 풍모의 모럴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부조리한 인간이 가는 길을 보여 준다. 불꽃에 복종한다는 것, 그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따금 어려움에 맞서서 겨루어 봄으로써 자신을 판단하는 일은 유익하다.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https://youtu.be/kwTHGoCagSk





홍대와 신촌사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중입니다. 피터캣은 문학, 인문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북카페 운영기와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