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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Dec 05. 2018

댄스 댄스 댄스 - 무라카미 하루키

15. 댄스 댄스 댄스 – 무라카미 하루키


1985년의 일이다. 네 번째 장편 소설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발표한 신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거의 완성한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쓰다시피 할만큼 유난히 고생이 심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주목 받는 신인에 대한 언론이나 출판업계, 문단의 과도한 관심과 간섭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하루키 입장에서는 시스템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이 결심은 작가 하루키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일본을 떠난 후 이태리와 그리스 등을 오가며 쓴 ‘노르웨이의 숲’이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댄스 댄스 댄스’는 당시 ‘노르웨이의 숲’과 거의 동시에 쓰여졌다. ‘노르웨이의 숲’ 이후 발표되었지만, ‘노르웨이의 숲’의 기록적인 인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 하루키가 작가로서 평생을 어떻게 살아가려 결심했는지 가장 잘 드러나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흔히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이어 발표된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까지 세 작품을 쥐 3부작이라 한다. 친구인 쥐(네즈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쥐 3부작 이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하며 쥐 3부작과는 이별한 듯 했던 하루키는 ‘댄스 댄스 댄스’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양을 쫓는 모험’에 등장했던, 주인공의 이혼이나 돌핀 호텔, 키키등이 배경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마도 어느 정도는 미리 계획되었을 것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대학 1학년이었던 주인공이 어떤 20대를 보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삶을 설계했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 어떻게 살아가기로 결심했는지에 대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작가 하루키가 지키고 싶은 결심이기도 했다.


눈 치우기


주인공은 어느새 34살의 프리랜서 작가가 되어있다.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잡지의 맛집 코너 같은 걸 맡아서 쓰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런 일을 일종의 문화적 눈 치우기라 부른다. 별 의미는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행위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굳이 주인공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34살이 가지는 삶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은 그런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어찌어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채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 그러한 마음의 떨림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 무엇을 찾아야 좋을지 알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는 것. 나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사물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작가 하루키는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30대 중반의 주인공이 유난히 많은 것에 대해, 굳어졌지만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그건 정말 어려워진다. 


무의미한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다시 한번 홋카이도의 돌핀 호텔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돌핀 호텔은 예전의 낡고 허름한 호텔이 아니다. 넓고 화려한 로비와 조용한 엘리베이터, 칵테일 바와 고급스러운 이발소에 심지어 지하 쇼핑센터까지 갖춘 호화로운 장소로 변해버렸다. 바뀌지 않은 건 이름뿐인 이곳에서 주인공은 자기만의 댄스 스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양 사나이는 말했다


“춤을 추는 거야”라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여러 인물들이 죽어간다. 하루키 작품 중에서 유난히 죽음이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해석의 자유가 있다면 나는 이 죽음들을 과거와의 이별로 이해한다. 그릇에 새로운 걸 담으려면 남아있던 걸 버려야 하듯,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선 과거의 생활이나 습관들과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각의 죽음을 해석하다 보면 과거와의 이별이란 단지 나쁜 습관이나 불행한 일들로부터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소중하고 놓치지 싫은 것들과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한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의미 같은 걸 생각하지 말고 어쨌든 춤을 추라는 양 사나이의 말은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보면 결국 과거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말이다. 


영화배우인 고탄다는 빠져 나오려면 빠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이미지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딕 노스는 자기만의 스텝을 찾지 못하고 타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메이는 영원히 어린 시절 유희의 세계에 남아있으려 했던 것 같다. 작가는 키키의 목소리를 빌어 이 모든 인물들이 다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스텝을 밟으려면, 좋건 싫건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우리 안의 이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루키의 팬들은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애정과 존경이 깊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네다섯 시간 동안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 체력 관리를 위한 달리기, 그리고 저녁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은 유명하다. 심지어 작가가 된 이후 무려 40년 동안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산다면 뭘 해도 잘 해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모방이라도 좋으니 따라 해보고 싶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가 평생 그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은 주위에 그런 사람이 아예 없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라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먼 북소리’,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등의 에세이에 잘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솔직하기는 하지만 자신에 관해 쓴다는 건 역시나 꽤 조심스러운 일인지 지나치게 겸손한 느낌이 든다.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알고 싶다면, 이야기 안에 자신의 결심이 잘 녹아있는 이 작품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




홍대와 신촌사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중입니다. 피터캣은 문학, 인문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북카페 운영기와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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