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협동조합으로 매점 만들기.
고등학교 시절, 내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교내 방송반 활동이었다. 돌아가면서 점심시간마다 30분 정도 짧은 방송을 진행했는데 한 주에 한 번씩 대본을 쓰고 노래를 고르고 하는일들이 어찌나 행복하고 좋았는지.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아리 생활은 ‘재미있음’ 그 자체였다. 점심 시간이 50분뿐인데. 교실에 있는 친구들 밥 먹는 시간에 방송이 나가야 하니 방송이 있는 날은 2교시나 3교시가 끝나면 브런치로^^ 도시락을 미리 꺼내 먹었다. “지금까지 기술에 ***, 아나운서에 윤혜정 이었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방송을 끝내면 남은 시간은 10여분. 안도감과 함께 배고픔이 밀려왔다. 학교 강당 옆 계단을 오르면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매점이 하나 있었고 미친 듯이 뛰어가면 햄버거나 핫도그, 혹은 시간이 잘 맞으면 라면까지 먹을 수 있었다. 그날도 방송이 끝나자마자 매점으로 뛰었다. 친구들과 함께. 햄버거 하나씩 사서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데우고 있는데 종이 친다. 30초 남았다. 살짝 고민이 되었지만 이미 햄버거는 반도 넘게 돌아갔고 곧 완성된다. 기다렸다 가지고 나오는데 매점 계단 앞에서 선생님 한 분이 서 계신다. “그거 들고 이리와!” 햄버거 봉투를 입에 물고 손들고 서 있으라는. 그것도 남학생 교실 바로 앞에 있는 현관에서. 햄버거의 맛있는 냄새는 솔솔 올라오고. 그때 그 햄버거를 결국 어떻게 언제 먹었는지까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창피했었다는 것, 그러나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나에게 매점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달려가던 추억의 공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보물 창고였다는 것.
그러한 추억이 빛 바래게 된 것은 성인이 된 어느 날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내가 그때 즐겨 먹었던 햄버거, 매점 빵들, 과자들을 만드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더러운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 반죽들을 다시 빵 반죽기에 섞어 돌리고있었고, 그 때 그 햄버거는 정체 모를 고기 부산물들을 갈아 패티로 재탄생 하고 있었다.
그 해 3월, 새로 부임한 학교는 뭔가 모를 에너지가 넘쳤다. 교사들도 관리자들도 뜻을 모아 좋은 교육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조직이었다.
선배 선생님에 의해 우연히 협동조합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집에 돌아와 관련 다큐멘터리를보고 책을 찾아보면서 ‘이거 뭔가 재미있는데? 정말 좋은데?’라는 생각이들었다. 재밌는 것은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 학기 초 학생들과 함께 협동조합에 대해서 알아가는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8명의 학생들과 나.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다 보니 더욱더 우리 학교에 협동조합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러나 교사인 내가 강요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제안하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협동조합 만들기에 흥미를 느꼈던 것처럼, 실제적인 주체인 그들 역시 스스로 흥미를 느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했다. 협동조합에 관한 영화도 같이 보고, 책도 보았다. 또 이야기도 많이하며 우리는 차곡차곡 안을 쌓아갔다. 5월 어느 날, 그들이 이야기한다.
선생님, 협동조합 우리도 만들 수 있지 않아요?
" 협동조합은 5명이 마음 맞으면 만들수있다는데 우리는 이미 9명이잖아요. “ “돈이 없으면 컨테이너에 우리가 직접 색칠해요.” “저는 청소는 잘 할 수 있어요.”
‘올레!!!!!!’
모든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에게는 자본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의욕에 불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번 도전해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학생들. 평소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를 포함한 팀워크 좋고 열정 넘치는 세 명의 교사들. 사실 그런 사업 꼭 해보고 싶었다며 먼저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적극 지원 하신 교장, 교감 선생님, 실제적인 작업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행정실 부장님. 평소 자녀들 먹거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학부모님들. 일이 잘 진행되려고 해서 그런 것인지 억지로 모으려고 해도 모으기 힘든 조합이 2016년 5월 그 곳에서 만들어졌다.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유는 다르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그곳으로 왔다는 것.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