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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ㅁㅎ May 26. 2020

그토록 바라던 F를 받았다

그의 이름을 알아내는 데 필요한 돈 43,300원

뭐지? 결국 피해 버린 건가? 왜 카페에 와버린 거야


가사가 없어 흥얼거릴 수 없는 잔잔한 배경음악과 백설기를 연상하듯 아늑하고 순수한 인테리어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카페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유명환 님"

"ㄴ..네"

"처음 오셨죠? 이거 체크 먼저 부탁드릴게요."

"ㄴ..네 감사합니다."


꽤나 많은 문항, 더러는 주관식도 있었다.


"응? 아 이 정도는 아니.... 흠....."

아닌 것인지,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마주한 질문에 솔직해지는 게 첫 난관이었다.


"진료실에서 약 받아 가세요."


"약을 받는구나. 약은 아플 때 먹는 거니까 난 아픈 거겠지. 고생 많았다 명환아.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지 뭐."

동요되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보단 상쾌함. 인생의 절반을 옭아매던, 나를 누구보다 외롭게 만들던 정체가 F321(주상병), F410(보조상병)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433만 원을 내라고 해도 '아...비싸네 뭐 어쩌겠어' 하며 계산했을 텐데, 웬걸? 나는 43,300원, 생각보다 저렴한 진료비를 내고 다시 시끄러운 군중 속으로 고독하게 걸어갔다.

F코드 : 우울증, 불면증, ADHD,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을 일컫는 상병 코드

 정신과는 처음 오는 게 아니다. 정체도 모르는 이 싸움을 시작한 14년 전 나는 이미 정신과를 방문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의 '문제없음'이 지금은 'Fㅁㅁㅁ', 그때는 정신과이지만, 지금은 '정신'과 '과' 사이에 '건강의학'이 더해졌다는 것 정도였다.


 다시 오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오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정신과에 간다는 행위가 주는, 사회가 주입해 놓은 두려움으로부터 나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스스로 납득될 정도로 나름 공부하고 왔다지만, 저 편견 가득한 공간에 내 두 발을 들이는 일, 더 이상 이성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광화문에 위치한 병원, 예약한 시간 그보다 훨씬 전에 나는 이미 청계천이었다. 차라리 미친 듯이 급한일이라도 있어서 정신이 온전히 거기에만 집중했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할 거라곤 오로지 불안을 마주하기 싫어 오디오로 내 생각을 마취하는 일뿐이었다. 그 오디오에는, 속세에 몰입할 수 있다면 결코 관심도 주지 않았을, 그렇기에 그 당시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철학, 그때는 플라톤의 국가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을 불안과 슬픔이 잠식하려고 할 때 맞서 싸워주는 것, 내가 오디오에게 기대하는 전부였다. 나는 언제까지고 수동적이고 싶었다. 한치의 능동성도 나에겐 최선을 다함, 사치 그리고 인위였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걸까?


당신에게 우울증 친구가 없는 이유,

첫 번째 에피소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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