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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ㅁㅎ Jun 11. 2020

할까 말까 하면, 해라

어쩌면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최근 인상 깊었던 글은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과 한 고등학생의 이메일에 관한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일면식도 없는 고등학생이 본인의 고민을 메일로 풀어서 현대카드 회장에게 보냈는데, 이걸 정태영 회장이 밀도 높은 장문의 메일로 답변한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저 메일을 보낸 고등학생에게 저 장문의 메일 한통이 결코 적은 임팩트는 아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나도 이전에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저 고등학생은 질문의 수준이 높고 미성년자였지만, 나의 질문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알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지 않았고 대학생이었다는 점 정도이다.


 시간은 2년 전 2018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교생을 나가기 직전이었고, 기숙사 독서실에서 취업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교육학이 전공인데, 교육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복수전공을 해서 임용고사를 준비한다. 가끔 기업의 HR 부서를 준비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때 HR이 좋아서 준비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진로계획에 회의감이 들어 다른 길을 찾아보다가 취업은 해야 하는데 과 애들이 저걸 준비하니까 저걸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컸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면서 애들이 초반에 비해 후반에 가면 의욕이 떨어져 팀 전체의 사기가 꺾이는 것에 많은 관심이 가던 때라 조직문화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같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훑어봤지만, '뭐 대충 이런 말인갑다 싶지만 그래서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와 닿지는 않는' 정도였다. 그래도 공채 지원은 해야 하니까, 아는 형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자료가 있으면 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금이야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아 돈을 내고 콘텐츠를 보는 게 익숙하지만, 이 당시에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무슨 돈을 내고 글을 보지?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었다. 애니웨이, 형의 계정을 통해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홀린 듯 다 읽었다. 나가기 싫은 소개팅에 억지로 나가는 것만큼 책 보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이 행위는 그 정도로 콘텐츠가 좋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럴듯한 이론이지만 그래서 뭐? 알맹이가 없는 콘텐츠'가 아닌, '상당히 구체적이지만 오직 거기에만 적용될 법한 글'이 아닌, 현장과 이론을 균형감 있게 전달해 보는 이로 하여금 스무스~하게 읽히고, 보고 나서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남아 후에 아! 하고 찾아볼법한 콘텐츠였다. 살짝 읽어보면 내가 뭔 말하는 건지 알지 싶다(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필력이... 겸손하다.)


 애니웨이, 나는 이 저자한테 한번 이것저것 커리어 관련해서 조언을 받고 싶었다....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자연스럽게 '어차피 답 오지도 않을 텐데, 질문하면 뭐하나?' 같은 생각도 따라왔다. 고민 좀 하다가 그냥 메일을 간단하게만 보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HR로 취업을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관련 책 추천해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나 등 뭐 이런 정말 보편적이고 먼지 같이 한번 불면 후~ 하고 날아갈 질문이었다.


그리고 답이 왔다.  


HR에도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내가 어떤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일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지만, 이런이런 분야가 있는데, 그중에서 이 분야를 준비하시려면 ~를 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그 뒤 이 메일을 받은 계정이 한 번 해킹되어 기억에만 의존하는 게 아쉽지만, 내가 보낸 질문에 족히 열 배가 넘는 장문의 메일로 왔고, 내가 했어야 하는 질문을 추측하시고 거기에 대한 답변도 주셨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때의 깨달은 점은 꽤나 분명했다.


잃을 것도 없는데, 괜히 고민하지 말고 그냥 질문하자. 아, 나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돼서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때 이후로 고민이 생길 때 그리고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전문가가 있을 때 나의 사고 회로는 이렇다. 


아 묻고 싶은데, 무시당하지 않을까? → 전에도 그랬는데, 결국 기대 이상의 답을 받았잖아? → 음... 그래도... 옥히 해보자!


 과거에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냥 넘기자' 하면 이건 내 잘못이 돼버리는 것 같아서라도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건, 진정성을 보이면 무시하는 사람 생각보다 적다. 

최근에 보내고 답을 받은 질문

 현재 퇴사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관심 있는 산업과 직무를 보는 중이라, 커리어 관련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가 있는데, 이때의 용기도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저때의 긍정적인 경험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더 현명한 판단이기도 하다. 주변에 나에게 당연히 대답해줄 수 있는, 그 분야를 '알 법한' 사람에게 묻는 것보다, 답변 가능성이 적더라도 내가 모르는 부분도 함께 알려줄 수 있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덤으로 엄청난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 돈 내고 봐야 하는 콘텐츠 제작에 내가 참여할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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