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에 작가가 된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에 나오는 문장이자, 내 마음에 늘 되새기는 꿈 같은 한 줄이다.
2년 전, 설 연휴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런 전화를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드문 일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전화를 받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잔뜩 경계하며 통화 버튼을 누르고 조금은 날 선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은 내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공모전에 작품 제출하셨던 작가님 맞으시죠?'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한 지 일 년 반 남짓이 지난 시점이었고
작가협회교육원 드라마 기초반 수업을 듣고 있던 지망생에게 작가님이라니.
꿈에 그리던 말이 나에게 붙이기엔 아직 너무나 생경해서 그리고 또 너무나 설레어서
그다음 말이 무엇인지 듣기도 전에 심장부터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었다.
2016년 공모전의 마감 일은
카페의 열쇠를 새 주인에게 넘겨주기로 한 날과 같았다.
이미 내놓은 지 꽤 오래되어 팔기를 포기했을 때쯤 내 카페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기다리던 일이었지만 어디 한 군데 내 손이 안 닿은 곳 없는 가게를 막상 새 주인에게 넘기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 헛헛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계약서에 사인을 하던 그날,
나는 느릿느릿 써오고 있었지만 사실상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소설을 완성하리라 결심했다.
열쇠를 새 주인에게 넘겨주기까지 남은 날은 20일 이었고 나에겐 25페이지 남짓 쓴 미완성 소설 초고가 있었다. 그것은 카페를 하며 글을 쓰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던 내가 부끄럽게도 그 기간 동안 거의 유일하게 쓴 소설이었다.
7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중편소설을 완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던 때였지만
그 공간에서 시작한 소설 한 편을 가게를 정리하기 전에 목표대로 마무리하는 것은 당시의 나에겐 카페를 운영하던 그 시간들을 '온전한 실패'로 내 인생에 기록하지 않기 위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카페 창업은 살면서 내가 가장 크게 친 사고이자, 가장 절절하게 경험했던 실패였고
그저 좋은 경험이었다고 웃어 넘기기엔 무척이나 쓰린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20일의 시간 동안 나는 그저 완성을 위해 남은 페이지를 채워갔고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목표한 날짜에 '일단 완성은 한' 소설 한 편을 공모전에 제출했다.
이후, 나는 서른도 넘은 백수가 되었고 당연히 공모전에 제출한 그 소설은 당연히 낙선했지만
오기에 가까웠던 그 일을 끝내고 난 뒤에 나는 이전 과는 조금 달라졌다.
어찌 보면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이었지만 중편소설 한편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성취감이
나를 다시금 쓰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 덕분에 나는 실패 앞에서도 다시 쓰기 위한 마음의 준비 할 수 있었고
다른 일을 시작했음에도 쓰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날, 내게 걸려 온 그 무명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마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후 그 인연으로 나는 난생 처음 작가 에이전시 계약을 했고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했고,
그 서투른 소설을 퇴고하여 짧은 e북을 발행했다.
순간의 결심이, 그저 완성을 목표로 써 내려간 그 글이
몇 년 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차례로 일어나게 했다.
여전히 작가라는 말은 나에게 넘치게 과분하고
목표로 가기 위한 과정은 기대만큼 순탄하지도, 욕심만큼 빠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이제 내가 포기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써 내려간 그 서투른 소설 한 편이 나를 다시 꿈의 앞자리로 데려온 것 처럼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에 작가가 된다.' 는 말이 사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