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말하다, 읽다(2015)>는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강연 글, 리뷰 등 다양한 형태의 산문을 싣고 있다.
이번에도 1번 칸 이야기. 15칸만 도전할 걸 그랬나..
삐뚤빼뚤한 매력 사이에 놓인 나란한 세 권의 산문집. 세트다!
5. <김영하 산문 보다, 말하다, 읽다>
<보다>
[ 머리칸과 꼬리칸 ]
: 영화 <설국열차>에서 편집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안에는 여러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 꼬리칸 승객, 머리칸 승객, 알바, 교수, 시인에 전직 영화 투자자까지. 기차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그들을, 아니 그들의 인터뷰를 싣고 계속 달린다.
위 내용의 진위여부는 그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럼 나는 편집당한 인물들로 한국판 설국열차를 만들어 본다.
[ 홍진의 속도 ]
멀지 않은 미래, 대한민국에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하이퍼루프'가 준공된다. 개통식이 있던 날, 대자연이 분노한다. 날로 심해지던 미세먼지가 결국 대한민국을 뒤덮고야 만 것. 세상은 붉은 먼지 속에 갇힌다. 사람들이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진공으로 만들어진 하이퍼루프 터널 안, 즉 기차 내부뿐!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버틸 수 있을까?
김영하 작가가 영화나 드라마를 본 뒤에 생각한 것들을 주로 썼다. 의미 있는 사건에 관한 비판도 있고, 때로는 작가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리뷰와 에세이 사이인데 에세이 쪽에 더 가깝다고 본다. 간혹 어떤 글은 단편 소설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시각'을 다뤘다.
산문집 세 권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비교적 짧은 글들이라 틈틈이 읽기에 좋다. 그래서 나눠 읽으려 했는데 펼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말하다>
김영하 작가를 분명하게 알게 된 건 소설 때문이 아니었다. SBS TV 프로그램 <힐링캠프(161회)>에 강연자로 출연했던 모습 때문이었다. 긍정이 희망을 만들고, 그것이 삶을 멋지게 일구어 준다는 생각으로 살던 시절. 힘들지만 힘내자, 노력해야 하니까 노력해 보자, 이러던 시절. 그로 인해 '힐링'과 '위로'가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부정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이들에게 '이제는 성공하기 힘들다'라고 말하는 김영하 작가. 신기했다. 프로그램 제목도 힐링이고 보통의 강연자는 좋게 좋게 말하기 마련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SBS <힐링캠프> 161회
수치로 짚어주는 경제성장률은 세부적인 자료를 더 보지 않아도 시대 분위기를 가늠하기엔 충분했다. 방송에서 언급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86년 10.6%, 2013년 2.8%. 김영하 작가는 2014년 12월 방송됐던 해당 강연에서 상황은 앞으로 더 나빠질 거라고 했다. 비관적 현실주의의 끝판왕이었다.
출처: 국가통계포털(KOSIS)
네이버 '경제성장률' 검색
경제학자도 아닌 그의 발언은 5년이 지난 2019년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작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7%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김영하 작가는 꿈을 위해 ROTC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몇 년이나 수입도 없이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당시의 낙관적인 시대 분위기에서 찾았다. 뭘 하더라도 먹고사는 문제 자체가 걱정되는 시기는 아니었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으며, 본인이 만약 지금 시대의 젊은이였다면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거라고. '너희도 분명히 잘 될 거야'라는 희망고문보다 더 따뜻한 위로였다.
김영하 작가가 읽은 문학작품들과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중 고전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대강은 알지만 깊이 몰입해 읽어보지 않은 작품들,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재미없을 것 같던 작품들, 읽어봐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면 새로운 작품들. 그가 말하는 고전에 관한 우리의 시각이다. 들켜버렸다.
말하는 바는 역시 '고전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고전'이 읽어야만 하는 당위성 짙은 교과서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그도 <오디세이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기억하던 바랑 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수천 권을 읽어 온 작가도 그러는데 일반 독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고전이란 한 번 읽어서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응원받는 기분. 그렇다고 마냥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도 아니다. 고전도 살펴보면 결국 여행기이거나 범죄 사건이거나 연애담이다.
김영하 작가는 '고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현대의 좋은 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고전의 소재나 양식을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저 이외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작가들이 '새로워 보이지만 실은 오래된' 작품을 써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의 긍정 버전. 김영하 작가도 소설을 쓰는 데 <오이디푸스 왕>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오만한 캐릭터의 자각(살인자의 기억법), 단 하루 만에 무너지는 완벽한 삶(빛의 제국)과 같은 것들. 이제 좋은 작품을 접할 때마다 그 원형이 궁금해진다. (네 어머님이 누구니?)
그가 자주 언급하는 작품들이 있다. <오디세이아>,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등. 왜 그 작품들이 수백 년을 거쳐 살아남았는지 비로소 궁금해졌다.
30번만 쓰면 될 줄 알았던 책장 훑기. 첫 번째 칸에서부터 네 번 쪼갰다. 두 번째 조각에서 또 나누고야 말았다.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