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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쟁 Dec 11. 2020

코로나 시대의 임산부 선언

검색어 '임산부 ○○○'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의 2020년도 어느새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다. 끝나가는데 좀처럼 끝나지 않는 해. 그런 시기에 난 임신을 했다.


철저한 계획 임신이었다. 본격적으로 준비한 기간을 따지자면 1년이 채 되지 않지만, 마음을 먹기까지 4년이 걸렸다. 아기는 살면서 꼭 낳고 싶었으나 결혼하고 나서 1~2년은 신혼을 즐기고 그 이후에 가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혼해 살다 보니 일을 놓고 싶지 않았고 내 꿈은 계속 커져만 갔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어찌 자식을 낳을까. 가끔 남의 아이가 예뻐 보일 때도 있었지만 나의 임신은 미루고 미뤘다. 부모가 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 3년 차까지는 별 생각도 없었다. 근데 작년부터 슬슬 양가 부모님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 엄마는 친구들의 손주 자랑에 "나만 없어, 나만"을 나에게 시전하셨다. 애 안 봐주겠다던 사람이 일주일에 두 번은 봐준다고 말도 바꿨다. 내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할 때마다 '그러다 나중에 낳고 싶을 때 안 생길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이럴 때조차 엄마 친구의 딸은 늘 엄마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실제로 요즘은 원인불명의 난임도 많고 하니 나에게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내 나이도 슬슬 고령 산모의 마지노선에 가까워 가고 있었고.

시부모님께서도 어느 날 아주 조심스럽게 아기 계획을 남편에게만 살짝 물어보셨었다. 나는 처음에 궁금하셨나 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같이 있을 때 물어보셔도 되는데 하고. 좀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혹여 부담이 될까 봐 그렇게 물으신 게 아니고 얘들이 난임인데 말을 못 하고 있나 싶어 걱정을 하신 거였단 걸 알게 됐다.


나도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엄마 말은 역시 잘 들어야 했다고 느끼게 될까? 이 때가 그때다! 이제 임신을 해보자! 그렇게 마음먹어지는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등등 임신을 준비하기 훨씬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론은 늘  '아직'이었다. 떠밀려서 애를 낳을 순 없었다. 애는 일단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않으므로.


임신 전, 임신해서 끝내 걱정이 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일을 못하는 것과 회를 못 먹는 것. 전자의 경우 내가 아주 운이 좋으면 건강한 상태로 만삭까지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출산과 회복, 최소한의 육아기간에는 옴짝달싹을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 기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2년일 것. 그 유명한 경력단절녀가 되는 것이다. 내가 경단녀라니! 상황에 따라 어쩌면 남은 인생의 전부를 육아에 힘을 써야 할지도 모를 일.

후자의 경우 회를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커피는 디카페인이 있으니 조금만 자제하면 되고, 술은 원래 잘 안 마셔서 아예 끊어도 전혀 걱정이 없는데, 회는 회여야만 한다. 생선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회'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그걸 10개월이나 못 먹는다니!! 이 해결책 없는 두 가지 때문에 아기를 가질 생각을 하다가도 더 망설였다. (현 시점에서 얘기하자면 회는 해결했다.)

그 외의 중차대한 일들을 종합해서 남편과 얘기를 많이 했다. 둘 다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린, 미래의 어느 날 아이를 갖기로 했다. 안 생기면? 안 낳고 살기로 했다.


결국 '그때'는 이 어려운 시기에 왔다. 그리고 다행히 라봉이가 생겼다.


임신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에도 임신에는 너무나 많은 오해와 썰이 난무한다. 나도 임신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임신을 준비하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는 것을. 결혼 전 20대의 내가 알고 있던 임신은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는 것을. 작은 증상 하나에도 임신부와 의사마다도 의견이 다 달라 옳고 그름이 불분명하다. 툭하면 '임산부 ○○○'으로 검색을 하는 게 일상이다. 이런 것도 누가 찾아보나 싶은데 누군가는 꼭 찾아봤더라. 수십 번을 검색하면서 단 한 번도 검색어가 자동완성이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걱정은 많은데 의사 선생님께 수시로 질문을 할 수 없어 많은 임신부들이 검색에 의지하고 있다는 방증.

당장 자기의 일인 임신부들도 이런 상황인데, 하물며 자기가 임신부가 아닌 사람들이 임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내가 부딪히고 깨닫는 것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임신출산대백과만으로는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아주 사사롭고 부끄러운 것들 위주로.


난 임신을 권할 생각도, 말릴 생각도 없다. 다만 나처럼 검색의 달인이 되어가는 어느 한 임신부에게, 주변에서 실생활을 보고 듣기 힘든 사람에게 내 글이 수많은 데이터 중 하나로 다가갈 수 있다면 뿌듯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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