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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쟁 May 29. 2020

방구석에서 추억 여행으로 숨통 틔우기

20200528

일단 이 시국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음에 감사하다. 추억 여행을 떠났다가 희미한 추억으로 남으려 하는 이 공간이 떠올라서 몇 번 더 망설이다가 결국 두다다다.






숨 참기

요즘 스트레스 지수가 아주 높다. 몇 년 전보다는 덜 바쁘지만 마음이 바빠졌다. 원래 그러다 말다 하는 사람이라 낯선 상황은 아닌데, 없던 습관이 생겼다. 도피. 원래 하기 싫은 일도 잘 하는 편이고 약간의 오차는 있어도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도망다니고 있다. 원래 사건은 한꺼번에 벌어지는 법이지. 내가 손대고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러하다. 미치겠다. 


딱 저번 주. 뭘 해야 하는지 잘 알면서, 심지어 '편집'을 할 일이라고 포스트잇에 적어 놓고도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다. 몰입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프렌즈 타운'의 기간 이벤트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1등을 했다. 게임 한 판을 깨면 얻을 수 있는 1~3개의 별을 이벤트 시작 때 같은 레벨 구간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많이 얻어버린 것이다. 아마 주어진 기간은 3일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밤, 2등과 아주 격렬히 다투었다. 2등한 사람이 나를 앞지른 적도 두어 번 있었는데, 그거라도 1등을 하고 싶어서 아침까지 몇 십개의 별을 더 얻어놓고 누웠다.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밝은 하늘이 느껴졌다. 내 스스로도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다른 건 뜻대로 잘 안 되니까 그거라도 1등을 만들었다. 웃펐다. 


영상을 만드는 일은 촬영할 때나 편집할 땐 즐겁지만 그것들을 안 할 땐 늘 괴롭다. 시간이 갈수록 더 그렇다. 머리로는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수많은 해를 이런 식으로 보냈기에 이제는 좀 자리를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채운다. 게다가 이번엔 끊었던 공모전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면서 부담감이 배가 되었다. 시작하면 잘해야 되니까 손을 더 못 댔었다. 차라리 취미면 쉽게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을. 핵심은 이거다. 결과물을 보는 눈은 자꾸만 높아져 가는데 실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3월 23일 정부에서 내린 학원 휴원 권고 이후로 두 달쯤은 자진해서 쉬었다. 첫 달은 음, 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했다. 며칠은 오랜만에 쉬는 기분도 났고 하루 종일 집안에 있는 게 생각보다 할 만했다. 자연스럽게 영상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과외를 쉬는 덕에 시간이 나다 보니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수 있었다. 첫 번째 기획이 편집까지 몇 편 한 뒤에 엎어졌고, 그걸 커버하기 위해 새로운 기획을 바로 진행했다. 두 건을 연달아 해 내려니 힘에 부쳤다. 그래도 마음엔 희망이 가득했다. 두 번째 달이 되니 언제까지 '시작'에 매달려야 하나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 '첫 키스만 몇 번째' 느낌으로, '시작'만 몇 번째였는지. 그 사이 코로나 상황이 좋아졌다. 과외로 내 평일 스케쥴은 다시 채워졌고, 영상 작업은 지속되었다. 기한도 의무도 없는 일을 기한과 의무가 있는 것처럼 하려고 꽤나 열을 올렸다. 그 결과는? 번아웃. 


번아웃은 초창기에 그 증상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좀 내려놓고 덜어놓아야 나아진다는 것도 아는데 아주 다 끌어안고 낑낑댔다. 사실 더 힘들지 않으려고 그랬다. 이번만 잘 넘기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지금 힘들면 안 됐다. 그러면 또 끝나 버릴 것이었다. 내가 힘들어서 놓기 시작하면 또 다른 시작을 해야 하고, 그러면 더 괴로워진다. 그 전까지의 작업에선 늘 시간만 부족했다. 부족한 시간은 내 자는 시간에서, 설거지를 할 시간에서 빼 왔다. 그러면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과외를 쉬며 집중할 시간이 생겼다고 오히려 좋아했다. 그게 더 큰 허탈함을 줄지는 미처 몰랐다. 시간은 있는데 결과가 안 나왔다. 그 사태에서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전의 부족함의 원인은 '시간'에 있었지만, 이번의 부족함의 근원이 '시간'이 아닌 '내 능력'임을 깨닫고 터져버린 것이다.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지만, 난 실패하면 작은 불티에 가스 화력을 심어버리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아주 그냥 활활 다 태워버렸다. 열정이고 희망이고 가치관이고 뭐고. 


숨 뱉기

그렇게 멈추고 보니 지저분한 집안이 눈에 들어왔다. 물티슈 위에 과자 박스, 그 위에 수능 교재 몇 권, 그 위에 구겨진 프린트, 그 위에 노트북, 그 옆에 마우스와 외장하드. 절레절레. 그래, 집을 좀 정리해 보자. 코로나 여파로 집에서 꼼짝도 안 하던 때에는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환경이 좋은 생각을 만든다지 않나. 집이 정리가 되면 마음에 좀 안정이 올 것 같았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구역이 부엌이었다. 몇 년 동안 묵혀둔 것들을 버리고, 펠리컨 박스를 사서 물건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그릇들을 정리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음은 안방과 베란다. 창고까지 합쳐서 물건을 재배치했다. 다음은 온갖 교재와 A4용지와 잡화로 범벅된 작은 방. 수업을 하고 돌아와서 밥 먹고 치우고, 빈 연습장에 그림 그려가며 물건 위치 계획하고, 수납장을 주문해서 택배가 오면 정리를 했다. 20L 종량제 봉투가 가득 채워졌다. 방은 좀 가벼워 보였다. 덕분에 묵은 체증도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우리 집 바닥이 이렇게 생겼었지. 오, 우리 집에도 벽이 있었어. 뭔가 좀 개운해졌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는 나를 보던 남편이 한 마디를 하기 전까진.


"찡(나)은 언제 쉬어?"


쉰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벌이는 게 바로 나였다. 남편의 말에 또 아차 싶었다. 나는 여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스트레스로부터 다른 스트레스로 또 화력을 키우고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집 정리도 일단 멈췄다. 답답한데 답이 안 보일 때 내가 찾는 게 하나 있다. 오늘의 운세. 가끔 보면 해석이 절로 된다. 내 상황에 맞게 내가 알아서 끼워 맞추기 때문이다. 어제 본 오늘의 운세는 이러했다. [ 열정이 과하면 욕심이 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시오. ] 하, 신통한 거 보소. 그래서 학생들의 시험 대비 프린트를 만들었다. 후.


숨 쉬기

이 숨 막히는 글을 그래도 써 내려갈 수 있는 건 오늘 우연히 떠난 추억 여행 때문이다. 남편은 가끔 TV로 재밌게 봤던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본다. 내꺼는 안 보고. 그러면 나는 남편이 보는 걸 슥 보고 재밌는 것 같으면 같이 본다. 남편은 딱 보통의 30대 남성 갬성이라 둘이 동시에 재밌게 보는 일이 별로 없다. 근데 오늘은 내가 오히려 더 재밌게 봤다. 역대 가요계 아이돌 관련 콘텐츠였다. 단순 랭크자료를 이렇게 재밌게 만들다니. 자막에서 동년배의 냄새가 났다. 싸이월드 언급은 뭐 기본. 게다가 노래방 좀 다녀본 분이었다.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방 노래들에 관해서 어쩜 그렇게 설명을 잘하는지. 공감 만배였다. 그리고 나의 웃음 지뢰는 UCC라는 단어였다. 그게 왜 그렇게 생소하면서 친근하던지. 유튜브 이전에 UCC 공모전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한참 깔깔거리며 보다가 내일 할 작업이 떠올라 현타가 왔다. 그래도 잠시 시름을 잊은 시간이었다. 


리모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채널은 오랜만에 KBS에 멈췄다. '올댓뮤직'이었다. 아, 오늘 목요일이지. 요즘은 본방 챙겨보는 일이 참 드물다. 그래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맞닥뜨리면 그게 그렇게 신난다. 마침 요새 한창 듣고 있는 스텔라 장의 '빌런'이 나오고 있었다. 스텔라 장을 처음 본 건 '작업실'이란 프로그램이었다. 뮤지션들이 작업하면서 작업을 하는 그런 신박한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에 어쩌다 출연한 건지 다른 출연자들이랑 뭔가 조화롭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끝까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작업을 하는 다른 출연자들과 다르게 작업만 하는 것 같은 캐릭터처럼 보였달까. 거기서 잠깐 말하듯 부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신곡을 냈길래 그냥 열심히 듣던 중이었는데 올댓뮤직에서 다시 본 것이다. 이 기회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민망하게, 요즘 다른 노래가 역주행을 해서 이미 글로벌하게 떴다고. 그 뒤에 나온 로니추도 좋게 잘 듣고 있는데 남편이 또 한 마디 거들었다.


"찡은 인디 쪽을 좋아하는 거 같애."


맞다. 무향무취향인 내게 있는 단 하나의 취향을 꼽자면 마이너. 전체적으로 대중가요를 다 좋아하긴 하는데 파다 보면 늘 밴드나 싱어송라이터 쪽으로 관심이 더 가긴 했다. 아까 노래방 관련 영상을 본 덕에 자연스레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방을 안 가게 된 이유가 생각났다.


"내가 왜 노래방 안 가게 됐는지 알아?"

"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노래방에 없어서."

"ㅋㅋㅋㅋㅋㅋ"


타이틀곡보다 수록곡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좋아할 법하니까 제작자들도 고르고 골라 타이틀곡을 선정하겠지만 나는 꼭 활동 안 하는 노래가 좋더라. 그래서 그런 노래들을 많이 듣고 따라 부르고 외워서 노래방을 가면, 없었다. 중고등학생 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갔었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좋아하는 가수들의 타이틀곡을 외워서 가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찾는 가수가 아예 없었다. 나참, 아는 노래는 그런 것들뿐인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노래방에 잘 안 가게 됐던 것 같다. 요즘 코인 노래방을 가도 거의 옛날 노래만 부른다. 그것도 지금은 못 가서 아쉬워 죽겠다. 


킥킥대다 보니 전에 올댓뮤직에서 보고 알게 된 밴드가 생각났다. '웁스나이스'. 검색을 해서 앨범을 다 들어봤는데 너무 내 취향인 거였다. 그래서 어쩌다가 카페에 가입도 했다. 가입인사 글을 썼던가, 노래 좋다는 글을 썼던가. 라떼 감성으로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들은 뭔가 거리가 먼 느낌이 있다. 실시간 대화를 나누는 건 너무 낯선 일이고, 쪽지를 보내서 '읽음' 표시만 떠도 설레는 존재인 것. 근데 그 밴드 멤버가 댓글을 달아줬다. 아 너무 당황스러웠다. 공연장에서 보면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하셨다. 넘치는 열정이 댓글에서도 보여서 진짜 가서 손 내밀면 하이파이브를 해줄 것만 같았다. 그 뒤로 몇 번 더 음악 페스티벌은 찾아 다녔지만 그 밴드의 공연은 보지 못했다. 한참 잊고 지내다가 올댓뮤직 본 김에 생각나서 검색을 해봤더니 새 앨범이 나온 지 좀 됐다. 아, 이 팀도 아쉽게 해체를 했나, 각자의 삶을 살고 있나, 다른 일을 하려나, 하고 검색 페이지를 훑어 보는데 얼마 전 공연을 했다. 새 앨범도 낸단다. 와, 내가 다 기뻤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들도 계속 해왔구나. 괜히 나 혼자 감동이었다.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늘 가던 음악 페스티벌도 가지 못할 것 같지만 언젠가 공연장에서 그들을 꼭 만나고 싶어졌다. 나도 지치지 않고 하던 일들을 계속 하리라 다짐도 했다.


숨 깊게 쉬기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난 김에 추억 여행을 계속했다. 한 카페가 눈에 띄었다. 오래 전, 나의 감성 성장에 오할쯤은 영향을 주었던 작가의 팬카페. 회원들 중 많은 인원이 여러 차례 정리가 되었고, 지금은 2~300명 정도만 남아 있다. 물론 활동도 한 달에 한두 번, 각자의 삶을 살다가 생각나는 누군가가 들러 흔적을 남기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몇 년 전 다시 글을 쓰겠다는 작가의 공지에 많은 회원들이 설레어 했었다. 나 역시 심장이 콩캉거렸다. 철저한 신비주의로 본인을 밝히지 않았던 작가였다. 이름도, 나이도, 추측은 가능하지만 성별도 모른다. 글을 매개로 가족 같은 분위기로 20년을 지내 온 사이라 우리를 위해서 한참 만에 다시 글을 쓰겠다 한 것이다. 한창 그 작가가 글을 쓸 땐 인터넷이 이렇게까지 더 발전해 있지 않았다. 익명 게시판도 많았고 일종의 사회적 프로필이 된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것도 없었다. 실시간 대화는 정해진 시간에 다함께 채팅창에 동시 접속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닉네임으로.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글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드러내는 일과 동일한 행위가 되었다. 그런데 그걸 하겠다는 것이다. 미지의 존재가 갑자기 현실 인간이 되려 하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었다. 난 그 작가의 글도 좋아했지만 그 작가 자체도 너무 좋아했다. 늘 궁금했는데 뭔가 덜컥 다가오는 기분이라 심장이 아주 벌렁거렸었다. 나 같은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서인지 새 글은 2년 째 올라오지 않고 있다. 대신 이전에 썼던 작품 중 하나를 다시 쓴다고 한다. 2년 전 올라왔던 그 첫 편을 읽으니 벚꽃이 휘날렸다. 올 봄에 못 본 꽃을 오늘 봤다. 올해에는 이어서 볼 수 있을까, 다른 이름으로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덕후는 그냥 그렇게 상상하며 기다릴 뿐이다. 이번에 책장 정리를 할 때도 그 작가의 전 작품은 고스란히 한 칸을 채우게 두었다. 몇 년 전에도 그중 한 시리즈를 다시 읽고 또 무한 감동에 빠졌었다. 역시는 역시. 십여 년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곱씹으며 읽으니 더 재밌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아는 사람을 꽤 발견해서 세상 모든 업계는 참 좁단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내가 쓰는 사람의 입장이기도 하니 상상보다 더 멋지게 마주하게 되면 좋겠단 생각이 감히 들었다. 그래서 난 멋진 성덕이 될 계획이다. 같은 업계 사람이 되는 뭐 그런 계획. 


별 걸 다 하는 나는 사실 이야기도 쓴다. 쓰다 만 것이 많다. 영상을 본격적으로 만들던 이유도 사실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였다. 뭐, 살다 보니 지금은 다른 쪽에 더 힘을 주고 있지만, 차례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갈 거다. 그걸 이 브런치에 할 생각이고. 잘 써야 된다는 부담은 브런치에도 똑같이 적용됐었다. 몇 달 동안 시간이 날 때도 몇 개 글을 썼다가 일기장으로 옮긴 이유다. 이 또한 내려 놓아야겠지. 그래야 채울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만들어 둔 스토리 중 최후의 보루였던 소재마저 세상에 나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익숙한 일이다. 이야기 같이 쓰는 친구들도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 전에는 해킹을 했네, 유출이 됐네 어쩌고 난리를 쳤다. 이제는 야, 이것도 나왔다, 하고 링크를 보내주고 같이 웃고 만다. 공모전 내는 것도 안 한 지 오래 되었다. 사람 생각이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충분히 분개할 만한 일들이 있었고,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억울하면 먼저 해야지 뭐. 놓쳤으면 다른 거 해야지 뭐. 그래서 새롭게 잘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성덕이 될 거라는 결론. 다 들고 가는 대신,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갈 거라는 다짐을 해 본다. 






문학에는 네 가지 갈래가 있다. 서정 갈래, 서사 갈래, 극 갈래, 교술 갈래. 교술 갈래는 일상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하위 갈래는 수필, 일기 등이다. 수필은 무형식의 형식이 특징이며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일기 또한 개인적인 일을 기록하여 글쓴이의 생각을 담는 글이다. 일기는 일기장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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