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착지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경유지일 뿐이다
그곳에 사랑에 관한 어떤 태도를 놓고 왔든
우리는 단지 종착이라 여겼던 믿음들을 경유했을 뿐이다
몇몇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아
영원에 가까워졌는데도 말이다
10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그때 아드리아해와 나란히
평행으로 놓였던 시간이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으나
청춘이 지나가려는 때에
고개를 내미는 그 고마운 시간이
낯선 터미널에서 몸을 싣고 내달렸던 밤
나는 끊임없이 문장을 써 내려갔다
무수한 밤이 문장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2.
한 문장은 나의 오른쪽 팔뚝에도 새겨졌다
스물여섯 해, 낯선 나라의 언어로 새긴 문장이었다
아드리아해에 아침이 밝아오자
그 문장 위로도 빛이 내려앉았다
반짝였고, 빛났다
하나의 사랑에 다소 많은 해명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누군가를 잃었고, 문장을 얻었다
경유와 종착이 거짓말처럼 짓궂게 반복되었다
외로움이 깊어졌고 기댈 곳이 필요했다
복잡하고 모호한 사람의 일이
살아가는 일이 한 문장에 기대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도 한다
나는 타국으로 가기 전, 그 문장을 얻었다
‘나는 내 인생을 금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밤이 새벽으로 지워지고
새벽이 아침이 되는 시간에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다가
차창에 머리를 맞대고 잠을 청했다
실은 불확실한 시절을 문장에 기대고 싶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아드리아해가 펼쳐져 있었다
3.
아드리아해는 푸른 물이라기보다 고여있는 빛에 가까웠다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고요한 노래 같았다
적막이 치유가 되는 법을 아는 듯한 푸른빛의 노래
아드리아해는 작은 숨결로 노래를 들려주었다
주저앉은 것들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숨결이었다
이따금 바다를 닮은 옅은 바람이 실려왔다
물결은 잔잔하게 넘실거리며 상처 난 곳을 보듬으며 또다시 어딘가로 유유히 흘러갔다
4.
그 사람이라면 나의 문신에
입을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한 글자 한 글자 뜻을 물어가며
미친 듯이 사랑했던 그 사람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 비극이 그렇듯이
나는 그 사람을 잃고 그 문장을 새겼다
오랜 방황과 굳은 결심 끝에
겨우 한 문장을 가지게 된 나의 꿈은 절실했다
다시 사랑이 찾아와서
문신에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길 바랐다
나를 지켜주는 문장에 키스를 하는 사람을
비로소 나는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5.
행렬처럼 사랑을 잃고서야 나는 깨닫는다
사랑의 본질은 상실이라는 것을
상실로 기록되지 않은 것은
사랑으로 기록될 수 없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길을 잃었던 이유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국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반복되는 낮과 밤 같은 일이며,
때로는 밤과 낮 같은 일이므로
종착지에 이를 때까지는
행렬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므로
사랑의 본질이 다가왔을 때
왜 나는 아드리아해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 바다에게 물을 수도 없다
그날의 낱낱한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다
6.
아드리아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
거기 있어 주었어서 지금도 거기에 있어 주어서
그날, 아드리아해의 빛이 나에게 반짝였을 때
나는 바다에게 말을 건넸던 것 같다
‘이번엔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