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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Aug 28. 2024

나이를 먹어 좋은 것. 내 안의 어둠 다루기.

혼자 지내는 날들이다.


최소한의 연락 라인만 켜놓은 채,

연결을 차단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 무기력하다.

영 상태가 모호하다.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쓸데없이 걱정과 불안만 는다.

뚜렷한 목표가 없다.

그다지 재미도 없다.

모든 게 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같다.


나는 나의 이러한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나의 관찰자로서,

나의 당사자로서,

의지를 잃어버린 나의 어두운 방을 알고 있다.


대체로 이때의 나는

자기효능감을 잃어버리고

잠속으로 침잠하려 한다.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오늘을 사랑하자고

마음 먹었던 나는 온데간데 없이

오늘의 목표를 잃어버리고야 만다.


책도 읽지 않고,

일기도 차일피일 미루고,

바깥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콕 박혀있다.


입맛도 없다.


얼음 가득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이

속을 차갑게 달래준다.


이때를 기회 삼아

끼니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침잠 다이어트를 해보자고 한다.


생활이 윤택하고

의지가 반짝거리다가도

꼭 한번씩 무기력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나는 이때 어디쯤 공전하고 있는 걸까.


나이를 먹으니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이 어두운 영역을 다루는

나만의 매뉴얼 같은 것이 생긴다.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니라

이 짜증 투성이인 시간이 견딜만 하다.


음울에 대하여 참을성이 생겼달까.


며칠 앓다보면 꼭 감기처럼 느껴진다.


감기를 앓듯,

'이번 무기력증과 어둠의 터널은

며칠 갈 것이고, 이때쯤 끝날 것이다'

라는 예감이 저절로 생겨난다.


가위에 눌렸을 때,

손가락 끝부터 조금씩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마비에서 풀려나듯이,


나는 이 어둠의 시간에

내 스스로 회복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왔다.


그러고 보면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게 아니라는

증거 같아서 괜히 코웃음이 난다.


점검 요망.

수리 요망.

불안 점검.


지금 내가,

지금 우리가,

어느 구덩이에 빠져있다면

그것은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뜻.

어딘가 점검하고 가야한다는 뜻.

불안과 걱정을 마주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뜻.


고장이 난 상태에서

섣불리 내 몸과 영혼의

아무 버튼이나 누르지 말자.


잠시 구덩이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보자.


조금 기다렸다가

내 마음에게 말을 하게 하자.

그 목소리를 듣자.


'뭔가를 해야할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오늘 무료하게, 무쓸모하게

가만히 누워있다가

내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일부러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해내려고 하지마'


'불안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주해,

대신 한두 정거장처럼만 머물러.

불안으로 너를 다 잠식하지는 마

불안의 정거장은 한 두개로 족해'


'뭔가를 다시 하고 싶을 때까지 가만히 있어'


'그리고 천천히 움직여'


'네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워밍업해 봐'


'일년에 며칠 소리 없이 산다고 해도 안죽어, 괜찮아'


'네가 쌓아온 시간을 믿고,

지금 너의 마음 속에서

고민하며 움직이고 있는 그 의지를 따라가'


'답을 찾으려고 하는

더 나아지려고 하는

너를 다정하게 안아줘'


내가 내 마음에게 답했다.


이번 어둠의 터널은 대략 일주일짜리인 것 같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나를 곤두박질치게 하지 않는다.


단절된 침잠의 시간은

매번 고역이고 낯설다.

그래서 친구 같지는 않다.


대신 나는 삶의 어떤 틈, 어떤 챕터, 어떤 일부로

그 어둠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잠시 움직이지 않고 멈춘다.


그저 나아지려고 하는 나를 위로한다.


나이가 준 기술 터득 같은 것이자

지혜이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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