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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Jan 19. 2022

인생은 수영이다

어쨌든, 수영 25

어떻게 보면 수영을 시작한 것도 도망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뭐에서였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몇 달씩 하루 종일 걸으면서 치유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진 않았다. 마음은 그 상태 그대로 내 몸속에 겹겹이 쌓여 무언가로 덮인 채 묻어둔 상태였다. 하루에 15킬로미터 이상을 6개월 이상 걸으면서 상처받은 마음과 나쁜 독소들을 빼냈다고 생각했는데, 몸 한구석에 밀어 넣어둔 채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고 지내던 거였다.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탈이 나는 법. 코어가 문제였던 허리는, 오래 걸어도 나아지지 않았던 허리 디스크는 수영을 하고 코어 근육을 키우면서 조금씩 괜찮아졌다. 옷을 갈아입을 때 서서 바지 한쪽 구멍에 한쪽 다리를 집어넣을 수 없는 상태였던 적도 었었다. 그럴 땐 바닥에 앉아서 겨우겨우 바지를 입고 낑낑 대며 양말을 신었던 적도 있었다(허리가 아파서 숙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때). 얼마나 비참했던지.


수영을 배운 지 5년 차에도 여전히 물구나무서기는 하지 못한다. 아쿠아 로빅을 배워야 물구나무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배우지도 못했다. 배우지 못했어도 자유 수영할 때나 쉬는 시간에 물구나무하는 분들을 종종 본다. 대부분 나이가 많고 수영을 오래 하신 분들이었다. 나도 따라 몇 번 시도해보았는데, 이것은 내가 한다고 되는 동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존경심과 함께 그 내공이 부럽기만 하다. 그 내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과연 물구나무서기는 배우면 할 수 있는 것일까? 고수에게 배우면 가능할까?


코로나 때문에 수영을 하지 못하는 2년 중에 1년 반 정도 한 것은 달리기였다. 집에서 아무리 유튜브를 틀어놓고 홈트레이닝 운동(띵끄부부의 유산소 운동, 죽음의 타바타 운동, 요가 소년 등등)을 따라 해 봐도 수영을 쉬면서 팍팍 찐 살이 절대 빠지지 않았다. 애플 워치 덕분에 일일 움직이기 목표와 운동 목표, 일어서기 목표, 세 개의 링을 다 채워 완성해도 찐 살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다. 달리기 앱인 나이키 런 클럽(nike run club)을 열어서 확인해보니, 재작년(2020년) 7월부터 올해(2022년) 1월 이번 주까지 달린 것이 509회 2,412킬로미터이다. 총 336시간 이상을 달렸다. 90킬로미터쯤 더 달리면 러닝 레벨 퍼플(2,500~4,999킬로미터)로 진입할 수 있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달리기에 대해 아무것도 잘 모르면서 여름인데도 무작정 거의 나가서 매일 뛰었다. 러닝화도, 호흡법도, 자세도, 걷는 타이밍도, 잘 모른 채 걷다가 뛰다가 힘들면 쉬다가를 반복했다. 마스크만 끼지 않고 달려도 기록이 더 빨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2달 이상 나이키 런 클럽을 뛰다가 이렇게 뛰면 허리도 무릎도 발바닥도 고장 날 것 같다는 생각에 런데이 앱(runday)의 8주 30분 달리기 도전을 시작하고 앱을 따라 달리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가지 달리기 미션을 완료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달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달리기 덕분에 찐 살도 5kg 이상을 뺐고,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나이키 앱 달리기의 첫 기록은 6킬로미터를 59분 40초로 달린 것. 1킬로미터를 9분 55초로 달렸다는 기록. 최근 달리기 기록은 평균적으로 1킬로미터를 6분 30초에 뛰고 있지만(달리기 시작했을 때의 기록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빨라졌지만 세상에 고수는 생각보다 많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오래 달리기가 갈수록 쉽지 않다. 달리기 기록이 좋아지지 않아서 달리기가 하기 싫어진 슬럼프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네 러닝 클럽이나 마라톤 클럽을 찾아보고 가입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혼자 뛰는 것은 어렵지만, 누군가와 함께 뛰면 혼자 뛸 때보다 덜 힘들면서 더 멀리 뛰면서 기록도 좋아진다고, 달리기를 알려준 선배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수영을 다시 시작해서 뛰기가 싫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15킬로미터씩만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올해의 운동 목표는 수영은 수영대회에 출전해서 자유형과 접영을 해보는 거고(코로나 때문에 수영대회가 열릴지는 불투명하다. 지금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달리기는 쉬지 않고 한 번에 15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몸을 만드는 것이다. 


10킬로미터를 뛸 때도 5킬로미터를 뛰고 2분 정도 걷고 다시 5킬로미터를 뛴다. 걷지 않고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뛰더라도 쉬지 않고 10킬로미터를 뛰고, 15킬로미터까지 쉬지 않고 뛰는 것이 목표다. 작년에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인 11월 25일을 기념해 뛰는 오렌지런(11.25킬로미터)을 참가해서 뛰어본 것이 지금껏 가장 긴 달리기 기록이다. 그때도 물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기록보다 더 멀리 뛰는 것으로 약간 높게 잡았다. 아직 1월이니까 2022년 12월에는 15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뛸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을 다시 시작하고 가장 어려운 영법은 자유형이다. 이렇게 자유형이 어려운 영법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배운 자세이기도 하고 가장 많이 오래 한 영법이기에 가장 편할 줄 알았는데, 한 바퀴만 빨리 돌 수 있고, 두 바퀴부터는 앞사람과 점점 멀어진다. 어깨부터 팔을 쭉 뻗어 롤링을 해야 하는데, 잘되지 않고, 물 잡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다리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음에도 발차기만 열심히 해서, 앞으로 잘 나가지 않고 숨만 찰뿐이다. 배에 힘을 주고 몸을 좀 띄운 다음에 앞쪽으로 중심 이동을 해서 발이 수면에 가까이 오게 한 후에 발차기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총체적 난국. 오리발을 껴도 더 빨리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수영도 꾸준히 할 계획이다. 수영을 다시 시작한 1-2달은 하루에 600~800미터쯤 수영했지만, 3개월 차에는 1,000미터 이상 수영을 하고 오리발을 한 날은 1,500미터 이상 돌아야 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1월도 벌써 반이나 지나갔는데, 이제야 하나씩 둘씩 목표를 잡고 있다. 운동 목표, 공부 목표, 독서 목표, 글쓰기 목표, 삶의 목표. 불가능하게 무리한 목표가 아니라 최대한 실현 가능한 계획과 목표로 좀 더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중간에 슬럼프가 오면 힘들다고 쉬면 되는데, 쉬는 법도 제대로 못 배운 나는 쉬기만 하면 뒤쳐지는 것 같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뒤쳐지는 느낌이라 뭔가라도, 뭐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일매일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하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다 뭔가 더 해서 이루려고만 하고 성취하려고만 하고 손에 뭔가를 잡으려고만 해서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론상으로는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재정비해서 하루하루 살아 나갈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지만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생도 수영할 때처럼 힘 빼기가 필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수영을 하면서 수영도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잘 나갈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호흡을 못해서 물을 먹을 때도 있고,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잠영에 성공할 때도 있고, 어느 날은 발차기가 되고 어떤 날은 몸이 무겁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매일매일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삶은. 오늘도 수영을 하러 간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 나갈 것이다.


겨울의 야외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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