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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Sep 08. 2021

권태기가 왔을 때

어쨌든, 수영 7

새로 오신 선생님에게 적응할 만하면 바뀌고 적응하기도 전에 바뀌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수영 강습 선생님의 복지와 대우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내가 듣는 수영 수업은 대부분 비정규직인 선생님이 진행했다. 선생님들은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거였다. 오후에는 다른 수영장에서 수업 강습을 하거나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영을 회원들에게 가르치는 것만으로, 어디에 소속된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선생님 외에는 다 다른 일을 같이 병행하고 있었다. 


수영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의 각각 다른 수영 스타일도 알게 된다. 수영장에서 말없이 스스로 수영을 터득하려는 사람도 있고, 수영이 어떤 동작을 하든 자기에게 운동만 되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든지 하나라도 선생님에게 더 배워야지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수영 자세를 바꾸지 않겠다며(고치기도 쉽지 않고, 지금껏 하던 대로 수영하는 것이 편하니까)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선생님보다 자기가 수영을 더 잘한다고 생각하며 새로 오신 선생님의 실력을 테스트하려는 회원들까지 아주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진상 포함)이 다 있었다.


기존 마스터즈 회원이든 초급 회원이든 모든 학생이 선생님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선생님도 다양한 생각과 요구를 가진 수영 회원들의 입장과 요구사항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새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생님에게 몇 번의 수업을 받고는 수영장에 선생님의 교체를 요구하는 회원들도 간혹 있었다. 선생님이 수영을 오랫동안 한 자신들보다 어리고 경력도 별로 없고 가르치는 것도 초보인 듯해서, 혹은 자신보다 설명을 더 못하는 것 같아 선생님에게는 더 배울 게 없다고 판단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곳을 지켜왔던 터줏대감 회원들의 깐깐함을 알려주려고 하는 걸까? 처음부터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없듯이 수영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수영도 배울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듯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방법도 어느 정도 시간과 경험과 노력이 쌓여야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수영을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는 수영을 하나라도 더 열심히 배우려고 물어보고 바꾸려고 애쓰는 자세는 좋다고 여겼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뭐라고 할 수도 없이 비판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유튜브 영상을 즐겨보지 않는다. 영상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수영을 좋아하고 더 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유튜브를 즐겨 찾아본다. 유명 수영 선생님들의 영법과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하는 부분의 영상을 찾아서 보고 또 돌려보고 같이 수영하는 친구들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가끔 공유해준 수영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머리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지만, 실제로 수영장에서 해보면 내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동작이라고 절실히 깨닫곤 한다.  수영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며 고민하고 하나하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특별 수영 강습을 따로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엄지 척). 난 허리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 코어를 키워서 더 이상 몸의 균형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 수영을 하지만, 수영에 꽂혀 수영을 진심으로 잘하고 싶어 엄청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부럽다. 그렇게 하나에 꽂혀서 열심히 하려는 그 마음이 부럽다(나이가 먹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처음에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수태기'가 왔다고 했을 때. 잉? '수태기'는 아이를 가졌을 때 쓰는 말인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가지면 수영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텐데... 수영을 오래 하다 보니 알게 된 단어였다. 보통은 이런 뜻으로 잘 쓰지 않는 단어인데,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다 알아듣는 단어. '수태기', '수영의 권태기'를 줄여서 쓰는 말. OMG ㅜㅜ 


수영의 권태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새 수영복을 사는 거였다. 수영장에는 수영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수영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일수록 수영복에 관심이 크다. 앞서 3화에서 얘기했듯이 수영복을 보면 신입 회원인지 마스터즈 회원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대부분 신입 회원들은 검은색 7부 수영복이고, 나의 첫 수영복도 역시 검은색 7부였다. 수영을 오래 한 사람은 화려한 색깔의 무늬 수영복과 다양한 브랜드를 종류별로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수모와 수경에도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슬럼프를 극복한다는 핑계로 일명 ‘장비병’에 걸리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브랜드에 따라 자기가 입는 수영복 사이즈를 체크하고, 수영복 브랜드 세일을 하는 시기도 수영 친구들과 공유하며, 해외 브랜드의 경우에는 한 명이 대표로 주문을 모아서 하고, 배송비를 1/N로 나눈다. 사이즈를 잘못 사거나 막상 구입해서 입어봤는데 맘에 들지 않는 수영복은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에게 중고로 팔기도 하고, 때론 선물로 주기도 하고, 가끔 중고사이트에 올리기도 한다. 당연히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사이즈가 맞을 때만 사고팔기가 가능하고 더 많이 깎아준다(지인 할인).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몇 번 수업을 빠지면(한 번 빠지면 가기 싫은 것은 모든 운동의 특징), 같은 반 수영 친구들(오랫동안 같이 수영을 같이 해왔기에)이 수영을 오라고 연락해주고 격려해주고 수영을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주고 응원도 건네줘야 한다. 아니면 수영을 그만두게 되고, 그만두면 또다시 쉽게 시작하기 어려운 운동이 수영인 것 같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하는 것이 귀찮을 때, 수영이 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은 다 수영을 잘하는 것만 같은데 나는 유연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지적만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수영을 그만두고 싶다. '내가 수영 선수하려고 수영하는 것도 아닌데 잘해야 해?'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마음 저 아래쪽에는 인어보다 더 수영을 잘하고 싶은 욕심과 욕망이 있다. 그러니까 수영 수업을 할 때 줄 서는 순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회원들이 와서 자기의 위치가 밀리거나 다른 반으로 이동하는 것이 싫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영복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 수영 권태기가 올 만큼 수영에 미치지도 않았다. 수영 친구들이 추천하거나 괜찮은 수영복이 나왔다고 알려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가격에 맞으면 새 수영복이든 중고로든 하나씩 샀다. 수영을 배우러 다니는 사이, 내 몸에 어떤 스타일의 수영복이 맞는지, 어떤 컬러의 수영복이 어울리는지 대충 알았고, 좋은 수영복을 중고로 저렴하게 구하는 방법도 조금 알게 되었다. 권태기는 아니었지만, 수영을 더 잘하고 싶어 작년(2020년)에 구입한 새 수영복 몇 개가 코로나 때문에 옷장 한구석에 보관 중이다. 언제쯤 꺼내서 입고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렇게 오랫동안 수영을 멈추게 될지는 몰랐다. 올해는 언제쯤 수영장에 발부터 머리까지 다 담가볼 수 있을까?



아직 한 번도 입지 못한 현란한 수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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