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맘먹은 이상
일단 써보기로 한다고 글을 시작하고 또 시간이 흘렀다. 당췌 시간은 왜이리도 빨리 흘러가는 것인지....
돈이 들지 않아서인가 힘이 들지 않아서인가. 신기하기만 하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들어갈수록 그 시간의 흐름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 때문이기도 하겠지.
맘 먹은 일은 왜이렇게 쉽게 접어지는지 모르겠다. 굳게 마음을 먹은 일이 채 세 편의 글을 채우지 못하고 두편에서 멈추었다. 뭐 대단한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자기기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가만 보면 '남'을 위한 일은 악착같이 해 왔는데 '나'를 위한 일에는 게으름을 피운다.
다시 새해가 되었고, 또 다시 마음을 먹었다. '다시 또, 일단' 써보기로!
쓰기로 맘먹은 이상, 이왕이면 의미있는 날에 시작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바로 오늘이다.
2월 첫 날!
나는 수학에는 약한데 숫자에는 능한 편이다.
특히 무슨 날, 무슨 날에 민감하다. 이벤트를 좋아하는데 주로 '무슨 날'과 관련한 이벤트를 벌이곤 한다.
어제는 그러니까 1월 31일, 1월의 마지막날이라서 뭔가 기념하고 싶었다.
날로 불어가는 체중, 커지는 나의 몸뚱아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연말에 한 건강검진 이후 다짐했지만 구정이 지나야 진짜 새해라며 우기고는 아직이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다이어트는'내일부터'하는 것이니 오늘(1월 31일)까지는 먹겠다 했다.
점심을 먹고 와서는 사무실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비스킷 한 봉지를 동료와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꼬박 한시간 뒤에 협업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고 좋은 일이 있어서 간식을 배달시켜주겠다는 것. 그 전화를 받은 동료가 씨익 웃으며 "정은, 오늘까지 먹어야겠어요. 피자나 치킨 주문하래요." 라고 말했다. 이건 뭐 될 사람은 되는 것인지 하늘에서 떨어진 '먹을' 기회 앞에서 우리 모두 웃었다. "얼른 골라봐요. 정은이 주문해요." 미션을 받아들고 모니터에서 요즘 유행하는 메뉴가 뭔지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한때 즐겨 먹었던 피자 브랜드 홈페이지에 이르렀다. 고민고민하며 메뉴를 정하고 그렇게 2시간 후에, 피자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어제도 그렇게 의미있게(!) 잘 보냈으니, 오늘을 더 잘 시작할 의지가 충만해졌다.
아침 출근길, 버스는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배차가 더 길어 20분이 넘도록 안오고 택시는 승차거부(설마, 요즘도 첫 차는 여성을 태우지 않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세대가 나를 모른 체 하고 지나가버렸다.)를 당한 탓에 욕이 절로 나오는데 억지로 참았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내가 출근길에 몸을 맡기는 버스도 지하철도 배차 간격이 통상 20분 정도다. 그러니 한 대를 놓치면 시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오늘은 우여곡절 끝에 20분 늦게 , 7시 20분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정돈을 하고 "그래, 오늘이야!"라고 마음 불끈하며 다시 브런치를 열었다. 연말에 만났던 Y님이 내게 매일 손글로 일기를 쓰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을 추천했다. 요즘 다시 N 블로그가 유행이라면서. 슬쩍 들어가 본 Y님의 블로그는 멋졌다. 주제가 명확했고, 다수의 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우연히 G님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꾸준히 쓸 생각이라는데 글이 착착 감겼다. 아는 사람의 글이라 그런지 더 흥미로웠다. 얼른 다음 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쩔까? 갑자기 블로그를 하자니 좀 쑥쓰러워서 어쩌다 가진 브런치 계정이나 활성화시켜야지.
이 같은 다짐을 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 토요일, 속초 완벽한 날들에서 진행된 <슬픔의 방문> 북토크에 참여하며 여러가지 생각과 다짐을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읽기'와 '쓰기'를 매일 하는 것이다. '읽기' 위한 준비는 완벽했다. 속초에 1년살이 하면서 사 모아 둔 책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아서 책 위로 가로로 눕고 책장 옆에도 쌓였다. 이제 나만 움직이면 된다.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쉬웠던 사람, 드디어 다시 출근길에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오늘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작가인 미정언니와 동료들이 함께 쓴 책, '눈에 선하게'를 읽으며 왔다.) 장일호 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많이 읽는 이는 잘 쓴다'는 명제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도 닮고 싶어졌다. 내가 많이 읽는다고 기자님처럼 글을 잘 쓰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배우고, 나의 글을 통해 나만의 기록을 쌓아가고 싶다. 마음 먹은 이상, 이번에는 꾸준히 해 볼 작정이다.
나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브런치 나의 계정 구독자는 현재 딱 열 분이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공간을 통해, 글을 통해 나를 제대로 만나고자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