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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 Dec 13. 2023

2023년 연말 결산 - 남편의 발병(?) 일지

통풍-양발목인대수술-당뇨-지방간

(나름 연말 결산 느낌 나는 LACMA 어반라이트 사진... by 나요)


데이트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구남친 현남편의 발이 아프기 시작한 게. 

우리 둘은 3개월 정도를 연락만 하고 쭉 지내오다가, 22년 2월 초 설연휴가 끝나고 나서야 드디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밥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해 만난 횟수가 서너 번밖에 되지 않았던 2월 말이었는데, 발이 꽤나 아파서 오래 걸어 다닐 수 없는 상황이라 너무 보고 싶은데 이번 데이트에는 어디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차 끌고 그쪽 근처로 간다고 했다. 내내 기다렸던 데이트였는데, 많이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한국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부모님 집에 같이 살고 있었던 터라, 그쪽 엄마는 내가 근처로 오는 김에 아예 집으로 오라고, 손수 밥을 차려주고 싶다고 아들을 통해 전하셨다. 


지난 이야기들이지만 나는 사실 남자친구들(?)의 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왜냐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혼자 사는데 따뜻한 밥 한 끼 얻어먹는 게 감사하고 좋았다, 그게 특히나 집밥이면 더더욱이. 그리고 보통은 맛있고 비싼걸(?) 많이 사주셔서 좋다구나 하고 몸보신하러 다녀오곤 했다. 


근데 이제 나이가 30대 중반인 데다가, 뭔가 얘랑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결혼할 것 같은 예감이 계속 드는데, 그리고 원래(?) 예비 시부모님은 되도록이면 많이 안 보는 게 좋다고 하긴 하는데, 하필 어머니가 또 엄청 음식을 맛있게 하시는 데다가 따끈한 집밥이라니. 


고민할 것도 없이 냉큼 오케이 하고는 그렇게 시부모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항상 첫 만남, 첫인상이 오래가는 것 같다. 두 분 다 얼굴 가득히 밝은 미소로 멀리서 온 나를 맞이해 주셨고, 소화제를 챙겨주실 정도로 배불리 먹었는 데다가 디저트와 남은 음식도 좀 싸주셔서 집에 가서도 감사히 잘 먹었다. 

사실 남편의 아픈 발이 아니었다면 시부모님을 그렇게까지 일찍 뵙고 인사드리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여하튼 요지는 이미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 뭔가 발 쪽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 두세 달에 한 번씩 발이나 다리 한쪽 어딘가가 아프곤 했다. 이쪽 발 앞꿈치가 아팠던 곳이 다 나았는데 이번엔 반대쪽 발목 복숭아뼈 근처가 아프다거나, 괜찮아지고 나서 조깅을 다녀왔는데 또 이번엔 무릎이 아프다거나 하는 식으로 꾸준히 아팠다. 종종 심하게 아플 때는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주신대로 약도 먹고 엑스레이를 찍기도 했다. 


내가 그 당시 다니던 회사를 4월부로 그만두고, 예정에 없었던 우연으로 가장한 상견례를 부산에서 5월에, 그리고 혼인신고를 7월 말에 하고 나서는 점점 남편의 그 아픈 주기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교회를 가야 하거나 부산에 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했을 때도 발이 아파서 취소하거나 몇 번이고 미룬 적이 있다. 


그쯔음 남편의 남동생이 통풍약을 먹고 있을 때라 계속 형도 통풍약을 한번 먹어보라고 했었다. 처음엔 귓등으로 듣고 흘렸는데 양 발이 점점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고 예전과 달리 며칠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자 어라..? 싶어 그제야 병원에 가서 요산검사를 해보니 통풍이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류머티즘 등의 관절염은 아니었지만 통풍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한 시기가 결혼식 한 달 전인 22년 10월이었다. 


그렇게 통풍을 진단받은 남편과 11월에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2주 뒤에 신혼여행을 넉넉히 처방받아놓은 약들과 함께 출발하여 12월 초에 돌아왔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는 통풍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발이 그래도 종종 아프곤 했다 - 이전보다 더 자주, 심하게, 또 지속적으로. 


뭔가, 좀 이상한데…


분명 이상하지만, 본인은 정작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아 나는 개입하지 않고 그냥 본인에게 맡겨두었다.  

남편은 그동안 아플 때마다 집 근처 가까이 있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봤던 것 같다. 그냥 지나가는 염증이라고 그랬다. 심지어 하루는 시어머니가 어디 아주 유명하다는 서울의 병원을 예약해 주셔서 혼자 절뚝거리며 병원을 다녀온 적도 있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서 진료실에 들어간 지 1분도 안되어 나왔다고 그랬다. 근데 나날이 갈수록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우리 둘 다 시부모님 회사를 같이 다닐 때였다. 

어느 5월의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남편은 발이 너무 심하게 아파서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다리가 아파서 하루 쉬고, 이틀 쉬는 식으로 회사에 며칠씩 못 나오게 되다가, 아예 6월 초부터는 남편은 쭉 집에서 누워 지내기 시작하였다. 누워서 쉬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6월 중순쯤 하루 날 잡고 직접 병원에 데리고 같이 갔다. 

MRI를 찍었더니 왼쪽 발목 인대가 nearly complete tear ; 그냥 거의 다 파열됨ㅋ 의 상태라는 것이다. 

오른쪽도 이미 파열이 꽤 많이 진행이 된 상태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뼛조각이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인대를 계속 갉아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관이었다. (본인은 분명 아팠을 텐데..?)

왼발 수술을 급하게 먼저 해야 된다고 했다. 오른발도 조만간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랬다. 

수술… 어디서 해야 하지? 

곧 다가오는 여름휴가철에 남편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한국행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놨다고 그랬는데…


남편보고 집에서 얼른 수술할 병원 검색해서 알아보고 수술 일정이랑 친구들 일정 조율 잘해보라고 한 뒤 나는 남편 없이 혼자 시부모님 회사로 출퇴근하며 쭉 근무를 해나갔다. 그러고 나서 그 사건이 터졌다. 

시부모님은 당장 오늘 수술을 해도 모자랄 애가 왜 수술일정을 안 잡고 있냐며 오전 내내 나에게 다그치시듯 화를 내셨다. 남편 본인이 이런저런 상황 조율 후 수술일정 정할 거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자꾸 나에게 따지시며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시길래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주 언짢고 불편한 티를 내시면서 돌려서 며느리에게 갑질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막상 아들한테는 한마디도 안 하셨더라.


나는 그렇게 굴욕적인 사건까지 겪으면서(?) 기다렸는데, 며칠 뒤 물어보니 남편은 본인이 받을 수술이나 관련 병원을 제대로 알아보고 있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화가 났지만, 각자 잘하는 것이 다를 수 있으니까 - 로 일단 참았고, 내가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를 모두 싸잡아 뒤지고 나서 찾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6월 28일에 왼발 수술을 먼저 받았고, 보조기를 뗄 수 있는 한 달 뒤인 7월 말에 친구 두 명이 한국에 와서 잼버리 끝날 때까지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갔으며, 나머지 오른발은 8월 16일에 수술했고,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우리 집에 들러서 9월 중순에서 10월 초까지 다녀갔더랬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 생일이 다가오니 8월 15일 점심에 만나 밥을 먹자고 하셔서 그렇게 공휴일도  반납했었고, 8월 말엔 남편 남동생이 미국 다녀오기 전이라 또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고, 9월 초에는 시어머니 생일이라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다 같이 또 밥을 먹었으며, 9월 중순 주말에는 할머니 생일 겸 추석 겸 해서 시댁가족모임이 있었으나 다행히 나는 한 달 전 잡은 선약이 있어 참석은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틀 뒤에 회사일이 끝나고 뭔가 분노에 가득 차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결국 차사고를 내기도 했고, 9월 말엔 남편 남동생 생일이었는데 형이랑 같이 밥 먹기로 했다며 나한테 뻥쳐서 결국 고기를 구워주지도 않는 식당에 다 같이 가서는 나는 고기만 실컷 굽다 오기도 했다. 


그렇게 5-6개월동안 꾸준히 많은 행사(?)들을 묵묵히 쳐내고, 추석 휴가까지 보낸 후 양발 수술과 재활을 끝낸 남편은 드디어 회사로 복귀하였으며, 나는 그와 동시에 바로 퇴사하겠다고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로 인한 풍파가 또 한번 지나가긴 했지만 겨우내 10월 근무를 마지막으로 퇴사를 할 수 있었다.


11월부터 신나는 백수생활 시작이다! 싶었는데 10월 중순쯤 받았던 직장인건강검진 결과 상 남편의 공복혈당이 230이 나왔다. 간수치도 높고, 고혈압 위험도 있다는 결과였다. 며칠 뒤 내원한 병원에서 다시 공복혈당을 확인해 본 바 190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2023년 11월 초에 당뇨 진단을 받게 된다.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양발 수술하게 되면서 운동량도 확 줄었고, 활동량이 줄면서 근육도 많이 빠지고 덩달아 살도 많이 쪘었다. 간수치도 많이 안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은 편이어서, 조금 더 정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또 병원을 알아보고 복부 초음파와 관련 혈액검사를 추가로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지방간이 있다고 나왔지만 다행히 그 외 간이나 다른 곳에서 이상징후나 염증은 안 보인다고 그랬다. 


그런데 그 전날 갑작스럽게 운동을 많이 한 탓인지 CPK라는 수치가 1500대로 상승해서 신부전이 올 수도 있다고 겁을 주셨다. 그래서 결국 통원으로 수액치료도 이틀 받았다. 그리고 당뇨식단 한답시고 고기를 왕창 먹었다가 잊고 있었던 통풍이 또 재발했다.

제발…….


그렇게 2023년 12월에 들어서면서 남편은 현재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여 살도 10kg 빼고 매일 공복혈당/식후혈당을 직접 재며 관리하고 있다. 다 와이프 잘 만난 덕(?)이다.


이렇게 나의 고군분투 빛났던✨ 2023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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