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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Apr 15. 2022

흐린 봄날의 얼그레이 스콘

비관주의자의 일상 

봄은 언제나 기대만큼 봄이 아니다.


봄 하늘은 대체로 회색이거나 하얀색이다. 기온은 생각보다 춥거나 예상보다 덥거나 둘 중 하나고, 벚꽃도 언제나 덜 분홍색이다. 봄이라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던가? 꼭 잘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서 더 우울한 계절이 봄이다.


남들 다 꽃구경 가서 셀카를 찍어 올릴 때 나는 하늘이 충분히 파랗지 않다느니 공기가 나쁘다느니 몸이 피곤하다느니 온갖 트집을 잡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다.


하지만 까다로운 비관주의자에게도 나름의 욕구는 있는 법이다.


날씨가 그리 '봄답지 않은' 봄날에는 따끈하고 달달한 것이 당기는데, 너무 달지는 않고 은은했으면 좋겠다. 너무 부드러운 것보단 약간 바삭한 식감이 있는 것이 좋다. 만들기 어렵지는 않지만 품위는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음... 


그래서 나는 빌 에반스의 <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들으면서 스콘을 굽는다. 




<You Must Believe in Spring>는 내가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노래다. 토니 베넷의 보컬이 들어간 버전도 있는데, 나는 피아노곡이 좀 더 자주 듣는다. 좋다.


이 곡은 봄을 노래하지만 흩날리는 벚꽃비와 사랑을 노래하는 곡은 아니다. 오히려 우수에 차 있는 선율로 시작한다. 인트로는 정말이지 '센티멘털'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중반부에는 살짝 경쾌하게 둥실 떠오르면서 긴장을 풀어주지만, 흔히 겨울의 잔재를 품은 봄볕이 그렇듯 밑에 깔린 푸른 그림자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이 곡의 녹음 당시 빌 에반스의 전 애인이 자살하고 형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단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할까? 



내 취향이 환하기보단 다소 그늘진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곡을 '우울함'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빌 에반스는 내면의 슬픔이나 우울함, 좌절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품위 있고 예의가 바르다고 느껴질 정도로 간결한 피아노 트리오 구성을 선택했다. 곡은 매우 섬세하고 약간의 멜랑꼴리를 갖추고 있지만, 그 감정에 잠겨 들지는 않는다. 피아노의 음 하나하나가 단단하다. 외유내강이라고 할까. 이 곡의 악보는 꽃가지보다는 구근에 가깝다.


이런 관점이 토니 베넷 버전의 가사에서는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눈이 내리고 모든 것이 오고 가는 세상,
당신이 믿었던 것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그곳에서
당신은 봄과 사랑을 믿어야 해요.



'봄이 왔네요'도 '봄이 올 거예요'도 아니라, "봄이 올 거라고 믿어야 해요."다. 사실 어쩌면 봄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곧 오는지 안 오는지는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봄이 온다고, 믿어야 할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스콘이 다 구워졌다. (사실 이 글은 스콘 반죽을 냉장고에서 휴지 시키는 도중에 쓰기 시작했다.)


이 레시피는 얼그레이 홍차잎이 잔뜩 들어간 스콘인데, 전체적으로 감도는 진한 홍차 향에 중간중간 들어간 화이트 초콜릿이 미적지근한 단맛을 낸다. 이 '미적지근함'이 포인트다. 아주 은근하고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지는 단맛, 있는 듯



무엇이든 꼬아보는 심성과 타고난 게으름 덕분에 올해 벚꽃 구경은 놓쳤다. 하지만 뭐, 아무려면 어때. 매사에 비관적인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다. 


나는 스콘 조각을 입에 넣으며 생각한다. 

이 미적지근한 우울과 은은한 단맛. 

음. 이게 비관주의자가 느끼는 봄의 맛이지.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간 얼그레이 스콘 레시피

재료

박력분 200g

설탕 40g

베이킹파우더 2g

소금 약간


무염버터 50g

계란 노른자 1개


얼그레이 홍차잎 10g 

우유 60g

화이트 초콜릿 40g



준비

- 가루류는 섞어서 체친다.

- 홍차 가루가 아니라 차엽 일 경우 잘게 다진다. (칼로 자르면 사방으로 튈 수 있으니 살짝 블렌더로 갈아버려도 좋다)

- 버터는 큐브 형태로 잘라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 화이트 초콜릿을 0.5~1cm 크기로 잘라둔다.


과정

1. 홍차잎 5g과 우유를 섞어서 전자레인지에 40초 정도 돌린다.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남은 홍차잎 5g과 체 쳐 둔 가루류를 섞은 후, 버터를 넣고 고슬고슬해질 때까지 섞는다.

3. 1의 우유와 달걀노른자를 섞는다. 

4. 2에 3을 넣고 잘 섞는다.

5. 화이트 초콜릿을 넣고 한 덩어리로 만들어준다.

6. 랩을 씌워둔 위에 올려서 밀대로 평평하게 늘린다. 반죽의 길이를 삼등분해서 양쪽으로 한 번씩 접어주고(3절 접기), 뒤집어서 다시 민다.

7. 3번 반복해서 접어준다.

8. 자르기 쉬운 크기로 반죽을 정돈하고 랩에 씌워서 냉장고에서 1시간 이상 휴지 시킨다.

9. 오븐은 200도로 예열한다.

10. 8의 반죽을 꺼내 잘라서 모양을 내고 오븐에서 15-20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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